구글은 라스베가스 등에서 자율주행차 주행 안전성 테스트를 통과하고 캘리포니아주는 자율주행차량 주행 법률을 개정중이다. 네바다주는 자율주행차량 주행을 허용하고 세계 최초로 면허증을 발급했다.
이러는 사이, IT업체들은 달리는 자동차 위에서 날고 있었다. 다 아는 얘기처럼 구글은 이미 2009년부터 자율주행기술 개발에 집중해왔다. 지난 6월 경미한 사고(총 14건)로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구글의 자율주행자동차는 지난 2009년부터 현재까지 약 289만6천km를 주행했다. 구글은 자율주행자동차의 자율주행모드를 통해 매주 평균 1만6천km를 주행 중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2015년 자율주행기술 개발을 선언한 애플은 완전 자율주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객관식 5지 선다형 문제로 시작해보자. 자율주행차가 사고 난다면 누구 책임일까.
1. 자동차회사
2. 보험회사
3. 정부
4. 운전자
5. 아몰랑
헷갈리시는가. 기자도 그렇다. 차라리 복수 정답이 허용된다면 나을지도 모르겠다. 공동책임,이라는 말은 분명 이런 때 쓰라고 생겼을 것이다. 굳이 기자에게 다시 물어본다면 ‘아! 나도 모르겠다’에 한 표 던지겠다.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차가 나온다면 이 문제를 놓고 당사자들 간에 머리깨나 아플 것이다(혹시 모르겠다. 우리나라라면 5:3:2 비율로 보험사들이 재빠르게 합의볼지는).
자율주행차. 말 그대로 운전자가 핸들과 가속페달, 브레이크 등을 조작하지 않아도 스스로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자동차를 일컫는다.
30, 40대라면 전격Z작전(1983년)이나 영화 토탈리콜(1990년)에 나온 자동차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자기가 알아서 운전하는 자동차라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운전중 졸릴 때 애써 졸음운전 쉼터를 찾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주 단순한 일에 속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율주행차에 대한 애깃거리가 부쩍 많아지고 있다. TV 광고(현대 제네시스)를 보자. 운전중 드라이버가 검은색 안대를 쓴 채 핸들에서 양손을 떼고 가슴에 다소곳이 X자로 모은다. 자동차는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 간다.
자동차 회사의 말로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이 앞 차와의 간격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래인 키핑 어시스트 시스템이 차선을 벗어나지 않게 주행했다는 것. 자동차는 앞서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추자 오토 이머전시 브레이킹 시스템이 작동해 저절로 멈춰섰다. 어려운 말은 몰라도 된다. 이 또한 자동차가 알아서 자율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니까.
사고 책임을 누가 지느냐의 문제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의문 아닌 의문중의 하나일 게다. 오작동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아직도 국내에서는 급발진 문제조차 원인규명이 분분하다), 사고시 책임범위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구글은 라스베가스 등에서 자율주행차 주행 안전성 테스트를 통과하고 캘리포니아주는 자율주행차량 주행 법률을 개정중이다. 네바다주는 자율주행차량 주행을 허용하고 세계 최초로 면허증을 발급했다.
이러는 사이, IT업체들은 달리는 자동차 위에서 날고 있었다. 다 아는 얘기처럼 구글은 이미 2009년부터 자율주행기술 개발에 집중해왔다. 지난 6월 경미한 사고(총 14건)로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구글의 자율주행자동차는 지난 2009년부터 현재까지 약 289만6천km를 주행했다. 구글은 자율주행자동차의 자율주행모드를 통해 매주 평균 1만6천km를 주행 중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2015년 자율주행기술 개발을 선언한 애플은 완전 자율주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자율주행기술은 어느덧 상상을 현실로 만든 기술 중의 하나가 됐다. 어느 날 아이폰이 세상에 나와 스마트폰의 정의를 새롭게 한 것처럼, 자동차의 개념도 다시 세워야할지 모르겠다. 문제는 기술만으로 시장을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업계는 2020년 경에는 법적 제약이나 자율주행 인프라, 차량 보안 문제가 대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기자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감히 예측한다). 본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엔지니어들이 꿈꿨던 기술중 현실화된 기술로 자율주행차를 가장 많이 꼽았다. 먼 얘기같지만 먼 얘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코앞에 와 있다. 자율주행차 사고 책임이 혹여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