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돌파구는 없는 것인가? 시스템반도체 현실을 토론해 보자는 자리가 또다시 원론을 되풀이하는 도돌이표가 되어 버렸다. 장소는 지난 13일 킨텍스 컨퍼런스룸, 반도체산업대전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반도체산업 발전전략 세미나의 시스템반도체 육성정책 수립을 위한 패널토론 시간이었다.
시스템반도체 육성정책 수립을 위한 패널토론에서 시스템반도체 생존법 제시
정말 돌파구는 없는 것인가? 시스템반도체 현실을 토론해 보자는 자리가 또다시 원론을 되풀이하는 도돌이표가 되어 버렸다. 장소는 지난 13일 킨텍스 컨퍼런스룸, 반도체산업대전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반도체산업 발전전략 세미나의 시스템반도체 육성정책 수립을 위한 패널토론 시간이었다.
사실 이날 토론회가 우리 반도체산업을 대변하는 비중있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산업통상자원부 한국반도체산업회가 주최하는 행사인데다, 그간 반도체 정책에 관여해 온 책임자와 현재 주요 시스템반도체 기업을 이끌고 있는 대표들이 참여한 행사라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취급될 시간은 아니었다.
패널토론 시간 대부분을 원론 반복으로 흘려 보냈지만 그렇다고 딱히 무슨 결론을 내리자는 시간은 아니었다. 국내 반도체 육성 방안을 토론하자고 해서 금새 해결 방법이 나올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문제가 있으니 문제 제기를 하고, 문제 제기를 해도 고쳐지지 않으니 문제가 되는 식의 악순환 아닌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2015전자전을 찾은 외국인 바이어들이 부스에서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 전자전 주최측 제공.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은 전년 대비 9.2% 성장(3,545억 달러)했다. 국제적으로 경기가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스마트폰, 디지털 가전, 자동차 등의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이 계속 시장을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사이 멀리 떨어진 추격자로 생각했던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무섭게 성장했다. 중국의 반도체 소비(2013)는 전세계 생산량의 55.6%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3년 중국의 IC 매출 규모는 전년대비 19% 증가한 408억 달러였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는 팹리스에서도 두드러진다. 세계 팹리스 상위 50개 기업 중 중국 팹리는 2009년 1개 기업에서 2014년 9개 기업으로 확 늘었다. 참고로 2013년 중국 상위 20개 팹리스 매출은 70억 달러 규모로 우리나라 팹리스 전체 매출(17억 달러)의 4배 이상 규모이다. 중국은 올해로 끝나는 집적회로산업 5개년 계획(국산화율 30% 실현)을 발판으로 다시 중장기 반도체산업 육성 계획을 세웠다. 2020년까지 글로벌 수준으로 발전하고, 2030년에는 글로벌 산업을 선도한다는 목표이다. 쉽게 말해 반도체 강국,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포부다.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 평균 영업이익과 순이익 계속 하락
이에 반해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계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내 상위 35개 주요 팹리스 기업들의 평균 매출액은 2010년 약 423억 원에서 2013년 511억 원으로 조금 늘었을 뿐이고, 평균 영업이익은 2010년 약 35억 원에서 2013년 약 20억 원으로 감소했으며 평균 순이익 도 2010년 약 19억 원에서 2013년 -654(백만원)원으로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번 시스템반도체 육성정책 수립을 위한 패널토론에서도 인력부족, 정부지원, 파운드리 지원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제기가 반복되었다. 국내 팹리스 기업의 대다수는 정부 지원정책이 미흡하다고 느끼고 있는 반면 정부는 국책사업을 통해 계속 지원해왔다는 입장이다. 단일 제품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M&A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칩 제작비 증가문제를 해결할 국내 파운드리의 지원을 원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
인력부족, 정부지원, 파운드리 지원 등 고질적 문제 반복
특히 인력난의 경우, 정부 기업 학교 측의 ‘동상이몽’이 심해지고 있다. 국내 팹리스 기업이 와해되면서 학교 졸업생들의 진로가 대기업으로 집중되고 있고 이로 인해 인재공급생태계가 파괴되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중소기업을 선택하도록 유인책을 만들고 산학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기업에서는 우수인력을 유치하기도 어렵지만 뽑아서 키운다고 해도 대기업 이직을 막을 방도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토론회 질문에 나선 한 팹리스 관계자는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누군가 이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적으로 성장한 큰 기업들도 초기에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스스로 알아서 성장하기만을 바라는 산업 환경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팹리스 관계자도 “기술 공유 생태계가 필요하다”며 산업 생태계의 부재를 지적했다.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따졌을 때,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지원해 주는 연계 고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도영 대표 ‘칩 안쪽을 보지 말고 칩 바깥쪽을 보라’
이에 토론에 참가한 패널들은 ▲국내 대기업이 사용하지 않은 IP를 중기업에 이전해 줘야한다는 의견과 ▲우수한 인재유치를 위해 팹리스의 성공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 ▲팹리스 기업에 투자하지 않으면 중국기업들이 국내기업을 사들여서 결국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견 등이 제시됐다. 정부 측 관계자는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일부 대기업의 실적 때문에 반도체가 잘되고 있다고 포장된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현재 내년도 신규 R&D 예산이 전혀 없다는 점도 확인했다.
예정된 시간을 30분이나 넘기면서까지 진행된 이날의 열띤(?) 토론은 다시금 열악한 팹리스의 현실을 일깨워줬지만 패널로 참가한 한 팹리스 대표의 발언이 한가닥 희망의 불빛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때 13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던 실리콘화일의 창업자 이도영 대표(현 옵토레인 대표)는 ‘칩 안쪽을 보지 말고 칩 바깥쪽을 보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투자인데, 회사는 투자자들에게 제품 판매(Product Sale)와 함께 비전(Vision Sale)을 제시하려는 노력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분야의 기술을 모두 이해하는 투자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바이오 IT 융합제품으로 투자유치에 성공했다는 이 대표는 ‘패러다임에 갇혀 있으면 안된다’며 융합시대의 생존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회사가 기술(제품)을 사오는 게 맞는지 개발하는 게 나은지 빨리 판단해야 하며, 사업적으로 필요하다면 자신에게 필요없는 것을 내주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바깥쪽을 보라’, ‘비전을 팔라’, ‘패러다임을 깨라’는 그의 말이 마치 길을 헤매는 이에게 던져주는 하나의 ‘화두’로 들린 것은, 토론에 참석한 사람들 중 비단 기자 하나 뿐이었을까. 갈 길을 잃은 한국 팹리스 산업이 한번쯤 생각해보아야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