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작업은 순차적 작업과 조건 분기의 조합이다. 조건 분기는 어떤 특정한 조건이 발생한 경우, 거기에 속하는 지시사항의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시사항의 실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조건이 발생했는지 알아야 하고, 이는 관측이므로 결어긋남이 발생한다. 즉 측정하지 않고 분기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EPR 역설과 벨의 가정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의 발달로 처리할 데이터양은 늘어가는데 집적회로의 한계는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서 트랜지스터로 만들어진 게이트 대신 양자역학의 원리를 연산법칙으로 사용하는 양자 컴퓨터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도대체 양자가 뭔지, 또 그걸로 어떻게 하여 대안이라는 걸까? 과학과 인연이 없던 기자가 양자부터 최근 화제가 되는 양자 컴퓨터까지, 배우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들여다본다.
양자 컴퓨터는 양자의 중첩 상태를 이용한다. 따라서 동시다발적 처리가 가능하다. 양자 컴퓨터는 중첩 상태가 유지되는 과정을 통해 연산을 수행하고 최종적으로 측정하여 결과를 얻는다.
문제는 중첩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결어긋남을 막아야 한다. 측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어긋남을 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컴퓨터 작업은 순차적 작업과 조건 분기의 조합이다. 조건 분기는 어떤 특정한 조건이 발생한 경우, 거기에 속하는 지시사항의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시사항의 실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조건이 발생했는지 알아야 하는데, 이는 관측이므로 결어긋남이 발생한다. 즉, 측정하지 않고도 분기해야 한다. 이걸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양자역학이 막힐 때는? 답은 '아인슈타인'이다.
EPR 역설
앞선 '[양자 톺아보기] 5. 코펜하겐 해석, 양자역학을 설명하다' 기사에서 나온 아인슈타인의 EPR 역설은 양자 컴퓨터 작동의 중요한 원리로 작용한다.
아인슈타인은 1935년,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이사하느라 잠시 중단했던 '양자역학 까기'를 재개한다. 보리스 포돌스키, 네이선 로젠과 함께 발표한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설명이 완벽하다고 볼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물리적 실재(實在)의 모든 요소는 물리 이론 내에서 그 대응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만약 하나의 계를 어떤 식으로든 교란하지 않고, 물리량의 값을 정확히, 즉 확률이 1과 같게 예측할 수 있다면, 이 물리량에 대응하는 물리적 실재가 존재한다.”
라고 주장했다. 논문에서는 예시를 들어 이를 설명했다.
양자역학적으로 두 알약의 정보는 비국소적이다
두 상자 안에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각각 넣는다. 그리고 아무 상자나 갖고 4광년 떨어진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에 간다. 도착해서 상자를 열어보니 파란 알약이 들어있었다. 그렇다면 지구에 두고 온 상자에는 빨간 알약이 들어 있을 것이다. 관측은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에서만 이뤄졌다. 지구에 있는 대상에 영향을 주지 않고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지구에 두고 온 상자에 든 알약의 색은 실재다.
알약의 색뿐만 아니라 위치와 운동량도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에서의 관측 결과에 의존한다. 두 알약이 같은 속도로 반대 방향으로 멀어진다면, 한 알약이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이 도착했을 때, 다른 알약의 위치는 측정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다른 알약의 위치가 실재적이기 때문이다. 코펜하겐 해석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없다. 측정이 위치와 운동량을 교란하므로 이 둘은 실재가 아니다. 하지만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에서 무엇을 측정했느냐에 따라 지구에서 알약의 위치와 운동량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에르빈 슈뢰딩거의 설명을 곁들이자면, 코펜하겐 해석에 따라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에서 갖고 온 알약이 파란색이란 걸 알게 되는 순간, 지구의 알약은 빨간색으로 정해진다. 그런데 우주에서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없다.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의 관측 결과는 아무리 빨라도 4년이 지나야 지구에 도착한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지구의 알약은 빨간색이거나 파란색인 확률이 각각 50%인 것인가? 그런데 지구에 있는 알약이 파란색인데 4년 뒤에 온 관측 결과도 파란색이라면 이는 우주의 모순 아닌가?
EPR은 이 상황은 잘못되었으며 양자역학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적 상호 관계가 빛의 속도보다 빨리 전달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비국소적'인 관계 때문에 양자역학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슈뢰딩거는 슈뢰딩거는 이런 양자역학적 상호 관계를 얽힘이라 불렀으며 이를 양자역학에 내재된 성질이라 생각했다.
EPR 역설의 검증
만일 양자역학의 주장과 달리 측정하기 전에 물리량이 미리 결정되었다면 EPR의 실재성의 역설은 사라진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변수가 있어 항상 모든 물리량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모든 것은 고전 역학에서와 같이 완전히 결정된다.
존 폰 노이만 "숨은 변수 없어"
숨은 변수가 있다면, 양자역학의 결과는 자연이 원래 그래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몰라서 그런 것이 된다. 그러나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폰 노이만은 양자역학에는 숨은 변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봄은 1952년에 숨은 변수를 이용하여 양자역학과 완전히 동일한 결과를 나타내는 고전 양자역학적 이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얽힘을 제대로 나타내기 위해서 이 숨은 변수는 빛보다 빠른 정보 전달을 허용해야 했다. 봄의 이 비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은 학계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의 존 스튜어트 벨 만이 예외였다. 벨은 1964년, 숨은 변수가 없다는 폰 노이만의 주장을 논파했다. 동시에 EPR 역설을 검증하자고 주장했다. EPR 역설을 실험적으로 검증하자는 벨의 아이디어는 EPR 역설을 실재니 뭐니 장자 왈 워쇼스키 왈 하던 '철학적' 논쟁에서 '물리학' 논쟁으로 끌어들였다.
벨의 부등식과 국소적 숨은 변수
상자 속에 2개의 알약이 또 들어있다.
국소적 실재성이란 알약을 고르는 순간 알약의 색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알약 하나를 멀리 가져가서 측정해도 그때 색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것을 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측정 전에는 물론 색을 알 수 없다.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나요?
벨은 국소적 실재성을 구현하기 위해 두 알약이 스핀, 즉 자전을 하며, 사람같이 행동한다고 가정했다.
두 알약은 측정당하는 방향에 따라 보여 주어야 할 결과를 적은 리스트를 갖고 있다. X축 방향으로 측정하며 회전 방향을 물으면 빨간 알약은 시계 방향(+1), 파란 알약은 반시계 방향(-1)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알약이 나뉠 때 어떻게 답할지 이미 결정되어 있으나 관측하는 사람은 이를 알 수 없다.
이 정보가 바로 국소적 숨은 변수다.
2개의 변수 x와 y는 +1, -1만 될 수 있다. xy를 곱하면 xy≤1이다. 이것이 벨의 부등식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적으로 벨의 부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x와 y를 동시에 정확히 아는 걸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x와 y가 불확정성 원리를 따르는 물리량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x가 위치를 y가 운동량을 나타낸다면? 아예 이 부등식이 성립하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
존 벨 "숨은 변수 있다"
따라서 벨의 부등식이 성립되면 국소적 숨은 변수가, 성립되지 않으면 양자역학이 맞는 것이 된다.
답은 실험 결과에 달렸다. 그리고 1982년, 알랭 아스페의 실험과 2015년, 네덜란드 연구팀의 실험은 벨의 부등식이 성립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는 국소적 숨은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비국소적 실재론과 국소적 비실재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아무튼 양자역학에서 우리는 대상이 내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측정이 대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실재성을 확인할 수 없을 뿐이다.
양자 컴퓨터의 작동 원리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컴퓨터 작업은 순차적 작업과 조건 분기의 조합이다. 조건 분기는 어떤 특정한 조건이 발생한 경우, 거기에 속하는 지시사항의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시사항의 실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조건이 발생했는지 알아야 하고, 이는 관측이므로 결어긋남이 발생한다.
즉 측정하지 않고 분기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EPR 역설과 벨의 가정이 필요하다.
벨의 가정을 컴퓨터의 관점에서 볼 때 A가 0일 때 B가 1이 되고, A가 1일 때 B가 0이 된다. A가 예(1), 아니오(0)의 대답이고 B가 지우거나(0) 놔두는(1) 행위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대답과 행위를 묶어 놓은 것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중첩되어 동시에 일어난다. 측정하지 않고도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말도 안 된다며 주장한 양자의 중첩과 얽힘이 양자 컴퓨터를 가능케하는 열쇠가 된 것이다.
양자 컴퓨터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2001년, IBM에서는 쇼어의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15를 소인수 분해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원자핵 스핀 7개를 사용했다. 큐비트 7개를 사용한 것이다. 15를 소인수 분해했다는 것이 뭐 대단하냐는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큐비트를 늘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어긋남을 막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1년, D-웨이브 시스템에서 128큐비트 양자 컴퓨터를 개발했다고 발표한다.
최초의 양자 컴퓨터를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D-웨이브 시스템의 2000Q 양자 컴퓨터
다음 기사에서는 상용호 된 양자 컴퓨터와 그 활용 방안에 대해 알아보겠다.
참고문헌 - 김상욱의 양자 공부, 사이언스 북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