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져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동시에 핵심이 되는 기술입니다. 본지는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통신의 역사부터 소소한 사건, 기술, 트렌드까지 통신과 관련된 이모저모를 다뤄보겠습니다.
▲수원 화성 봉돈 정측면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불에서 시작된 고대 통신, 수천년 명맥 이어오다
봉수제·역참제·파발부터 모스부호와 전화기 발명까지
[편집자주] 통신의 역사는 인간의 연결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역사입니다. 선사 시대부터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통신의 기능은 소통과 약속의 수단으로 작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888년 조선시대 전기통신이 최초 도입됐으며, 해방 후 1980년대 통신사업과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정보화 시대가 개막했습니다. 이제 5G, 6G 시대를 맞아 차세대 통신이라 꼽히는 위성통신, 양자통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로봇·클라우드·UAM 등 첨단 기술 발전과 함께 통신은 점점 중요해지며, 끝없이 발전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통신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져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동시에 핵심이 되는 기술입니다. 본지는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통신의 역사부터 소소한 사건, 기술, 트렌드까지 통신과 관련된 이모저모를 다뤄보겠습니다.
■ 시청각을 이용한 고대의 통신
J. R. R. 톨킨의 원작, 피터 잭슨의 영화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에서 백색의 마법사 간달프는 호빗 피핀을 시켜 미나스 티리스의 봉화대에 불을 붙인다. 순식간에 불이 붙은 봉화는 연기를 가득 뿜어냈고, 이 불빛과 연기는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며 최종 목적지인 로한에 닿았다. 간달프는 봉화를 통해 로한의 응답을 받아 전쟁을 위한 군사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간달프와 로한은 통신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통신’이란 어떤 정보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통신이 성립하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한다. 통신은 고독을 꿈꾸지만 여전히 누군가와 연결돼 있기를 바라는 인간의 본질을 표방한다. 또한 통신에는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리 있는 상대와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쇄술 - 도활자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통신을 위해서는 다양한 수단이 존재하는데, 현재의 가장 필수적인 통신 수단인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도 많은 통신 수단이 있었다. 인간의 언어와 문자는 공간적·시간적 제약의 한계를 넘는 통신수단이다. 문자로 사건의 기록이 가능해지며 더 상세한 정보를 서신에 적어 많은 양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 개발된 금속활자는 사회문화적 발전에 기여했다.
문자의 발명 이후에도 인간은 멀리 떨어진 상대에게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불빛, 소리, 연기 등 시청각을 이용했다. 예컨대 신라시대의 에밀레종, 북 등은 소리를 이용한 통신 수단이다. 봉화·봉수는 19세기 말까지 중요한 수단으로 쓰였다.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꽃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했다.
서신 전달을 위한 통신수단으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비둘기 다리에 쪽지를 매달아 날리는 방식인 ‘전서구’를 활용했다. 파발은 신라시대부터 공문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며 활용됐다. 사극 드라마를 보면 종종 신하가 서신을 들고 직접 뛰어가 지방에 상주한 군사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급한 상황에서 군사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해 활용된 파발은 전기통신과 근대식 우편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존속됐다.
조선시대의 역참제는 공공·민간 우편물을 전달하는 과거의 우체국 시스템이다. 전국 곳곳에 있는 역에 우편 체계를 구축해 말을 탄 배달원이 역에서 다음 역으로 서신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역참제에서 유래한 ‘한참’이라는 단어는 5~10리, 약 40km 간격으로 설치된 역을 의미한다.
■ 1800년대, 시작된 통신 혁명
▲한글 모스부호
1800년대에 이르러 전기통신이 도입되며 통신 혁명이 시작됐다. 1844년에 이르러 모스는 그 유명한 모스부호(Morse Code)를 발명했다. 모스부호는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다송이가 보이 스카우트에서 배울만큼 비교적 쉬운 편이라는 의견이 있다. 모스부호는 점과 선을 활용해 독자적 알파벳 기호로 구성된 통신 장치다. 전기를 이용한 전신기는 현대 통신 시스템 구축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876년 그레이엄 벨(Bell)이 전화기를 발명한 것은 세기의 혁신으로 손꼽힌다. 벨이 전화를 발명한 다음 해 전화기가 보급돼 일부 사람들에게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편 최초의 전화기 발명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은 존재한다. 벨 외에 필립 라이스, 엘리샤 그레이, 안토니오 무치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것처럼 단독 창의물이 아니라, 벨은 최초 전화기를 특허를 받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의 연구와 노력이 동일 시대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연구와 실험 속에 완성도를 높여 특허를 빠르게 신청한 벨의 공헌은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에 최초 전기통신이 도입된 시점은 1885년 9월로 추정되고 있다. 청나라의 자본과 덴마크의 기술로 인천과 서울(한성) 간 전신시설이 설치됐다. 실제로 전화가 도입된 것은 세창양행이 민간 차원에서 인천과 강원도 간 전화를 개통한 1899년으로 보고 있다. 전화사업이 시작된 것은 1902년 3월경 전화소의 설치 및 같은 해 6월경 한성전화소 시내전화 교환업무를 개시함으로 실현됐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최초의 전화기는 1890년대 궁중에 설치된 전화교환기 혹은 일부 전문가들은 에릭슨사의 벽걸이 전화기를 제시하고 있다. 1898년 우리나라가 궁내부에 자식식 전용 전화를 개통할 때 전화로 명령을 하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에릭슨의 자석식전화기(model 301)는 심미성이 뛰어난 디자인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는 설명이다.
전화의 도입과 함께 전신시설이 가설되고 전화사업이 활발해지며, 1903년 대한제국 정부는 농공상부 통신국을 폐지하고 통신원으로 독립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화관련 기기와 기술의 도입이 시작될 무렵, 1905년 4월 일제에 의하여 통신권을 박탈당해 통신산업 발전의 기회를 잃고 만다.
다음 편에는 본격 무선통신이 시작되기 전 통신 암흑기를 겪었던 해방 전후 통신 역사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