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3차 제재를 시행하면서 화웨이와 화웨이 계열사 106개에 대한 반도체 공급이 원천 차단됐다. 화웨이는 현재 최대 6개월 정도 유지할 수 있는 부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번 수출 금지 조치가 1년간 이어지면 연간 10조 원의 매출 차질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美, 3차 제재로 화웨이 반도체 공급망 차단
제재 1년 이상 가면 관련 韓 기업 10조 손해
화웨이 대신할 공급망 및 시장 개척 절실해져
미국 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제재 수위를 점점 높이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포위망이 점점 좁혀지고 있다
2019년 5월, 미국은 미국 기술을 이용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수출할 때 미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1차 제재를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반도체만 해당하여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
미국은 2020년 5월,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를 겨냥한 2차 제재를 발표했다. 제3국에서 생산된 ‘화웨이가 설계한’ 반도체가 미국 기술을 이용했다면,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고 화웨이에 공급하도록 한 것이다.
2차 제재 이후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5nm 파운드리를 짓겠다고 밝혔고, 7월에는 화웨이 신규 주문을 받지 않겠다며 거래 중단을 공식화했다. 이후 미국은 우회 공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2차 제재에서 ‘화웨이가 설계한’이라는 문구를 뺀 3차 제재를 9월 15일부터 발표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 정부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를 제재 명단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고강도 정책을 고수키로 했다. 3차 제재가 내려진 지 하루 만에 SMIC는 미국의 제재를 준수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3번의 조처로 화웨이와 화웨이 계열사 106개에 대한 반도체 공급이 원천 차단됐다. 반도체의 발상지인 미국의 기술을 이용하지 않고 제조되는 반도체는 이 세상에 없다. 반도체 설계 도구와 제조 장비에서도 미국 기술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한국, 화웨이 제재 1년 이상 이어지면 10조 원 손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화웨이의 영향력은 적지 않다. 2019년, 화웨이의 반도체 구매액은 208억 달러로, 애플(361억 달러), 삼성전자(334억 달러)에 이은 3위 규모다.
글로벌 기업들은 오포, 비보, 샤오미 등 화웨이의 중국 내 경쟁사나, 전 세계 프리미엄 스마트폰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애플을 대체 고객사로 모색하고 있지만, 새로운 공급망을 확보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또한 미국 정부가 화웨이 제재를 오포나 비보 같은 다른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로 확장하거나 중국 정부가 애플에 보복성 제재 등으로 맞대응하면 시장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마트폰용 D램과 낸드 플래시메모리 반도체를 화웨이에 판매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계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화웨이는 2019년을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체 매출 중 3.2%, 11.4%를 차지하는 핵심 고객사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액 중 중국 수출 비중은 41.1%에 달한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수출 금지 조치가 1년간 이어지면 연간 10조 원의 매출 차질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화웨이 스마트폰과 기지국 설비 등에 탑재하는 부품 30%를 공급해온 소니(이미지센서), 무라타제작소(적층세라믹콘덴서), 키옥시아(메모리) 등 일본 부품 업계도 주 수익원을 잃게 되면서 큰 손실이 예상된다.
디스플레이 업계에도 불똥이 떨어졌다. 디스플레이 패널 구동칩이 제재 대상에 포함되며 패널 통째로 납품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주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기업은 미국 상무부에 화웨이와의 거래 허가 승인을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이 강경해 답변을 받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승인을 받더라도 어디까지 라이선스를 부여할지 미지수다.
영국의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9월 14일, 화웨이와 거래 중단으로 한국·일본·대만 기업 손실이 294억 달러, 한화로 34조9,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6개월 시한부 화웨이, 반격 가능한가?
반도체 수급 위기에 화웨이는 9월 15일까지 반도체 재고 물량 확보에 전력을 다했다. 화웨이는 현재 최대 6개월 정도 유지할 수 있는 부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고 소진 시 화웨이의 스마트폰 및 통신 장비 사업은 중단될 전망이다.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화웨이는 8월 5일, 미국 기술이 들어간 부품을 사용하지 않는 ‘난니완(南泥湾)’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또한, 2021년부터 화웨이 스마트폰에 자체 OS인 훙멍(鴻蒙; Harmony)을 개발하고 탑재할 방침이다.
9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20에 참가한 화웨이는 오프라인 매장 50개를 유럽 전역에 오픈하여 성장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EMEA(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은 중국 내수에 이은 화웨이의 주요 시장이다.
화웨이가 5G 특허를 이용해 미국 기업을 공격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화웨이의 강점은 통신 장비 기술력이다. 지난 6월, 블룸버그 뉴스는 1,658건에 달하는 5G 핵심 특허 중 화웨이가 302건(19%)으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했다고 밝혔다. 전체 특허의 80% 이상을 6개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미국 기업은 퀄컴 한 곳뿐이었다.
하지만 전자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조달이 불안정해진 이상 화웨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제한적이다. 미국이 완화 조치에 나서거나, 화웨이가 중국 기술과 장비로 반도체를 직접 만들지 않고서야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과 미국·한국·대만의 반도체 생산 기술 격차는 3년이다. 이를 단기간에 역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 기술력이 포함되지 않은 분야가 없는 만큼 화웨이 입지는 약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면 안 돼
3번에 걸친 제재로 글로벌 시장은 물론 국내 ICT 시장 공급망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화웨이는 국내 기업의 주요 고객사로, 거래 중단에 따른 충격을 상쇄시키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
정부와 기업은 새로운 공급처와 시장을 발굴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사태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