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다수의 국가들이 화웨이의 5G 장비 도입을 거부하며 미국의 화웨이, 더 나아가 중국의 견제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은 중국의 첨단분야 경쟁력 확보 저지와 자국의 안보 등을 이유로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고강도 제재를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뒤를 이을 바이든 행정부도 이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5G 우위에도 판매처 차단당하는 화웨이
부품 수급에 어려움, 자급까지 시간 필요
美 견제,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지속될 것
유럽 중동부 국가들인 슬로바키아, 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 그리고 코소보는 지난 10월, 미국 국무부와 5G 네트워크 구축 과정에서 장비 공급사 선정 시 ‘외국 정부의 통제 여부’를 고려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 내용에서 특정 국가와 기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국가 안보 위협, 개인정보 유출 등 의혹을 받는 기업이란 설명에 사실상 화웨이, ZTE 등 중국 업체를 겨냥한 것으로 드러났다.
▲ 화웨이 견제에 동참하는 국가들의 수가 계속 늘고 있다
[사진=Matti Blume]
이반 코르콕(Ivan Korcok) 슬로바키아 외무장관은 “이번 협약은 5G 보안성을 확보하려는 국가적 노력과 합치한다”라며, “모든 사람이 (화웨이 장비와 기기와 관련한) 안보 관련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고, 어떠한 백도어 행위도 원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백도어(Back Door)란, 개발자나 관리자가 컴퓨터 시스템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비공개 접속 기능으로, 화웨이는 세계 각국에 수출한 통신장비와 휴대전화에 백도어를 설치해 정보 탈취를 시도한단 의혹을 받고 있다.
북마케도니아와 불가리아의 총리도 공정한 경쟁과 투명성을 기반으로 5G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며, 이번 협정이 국가의 미래 번영을 위해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2012년부터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동부 유럽 국가와 정기 협의체인 ‘16+1’ 정상회의를 주도해 온 중국으로서는 이번 협약으로 향후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은 화웨이 견제에 동참하는 국가들의 수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고 ‘ICT 브리프 2020-41 주요국 동향’에서 밝혔다. 지난 7월, 영국이 화웨이 장비의 단계적 전면 퇴출을 공식 선언한 가운데, 10월에는 스웨덴도 배제 입장 발표했다.
프랑스도 자국 산업 보호와 안전을 이유로 화웨이와 ZTE 장비 도입 금지를 우회적으로 시사했으며, 이탈리아는 자국 통신업체인 파스트웹과 화웨이의 거래를 차단했다.
이 같은 유럽 국가들의 강경한 움직임에 화웨이는 자사는 어디까지나 민간회사라며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단순한 의혹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 따르면, 미국 주요 정책 입안자와 유럽 최고 정보 관리들은 중국 기업이 유럽의 5G 시스템 개발에 참여하면 기술탈취의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으며 과도한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살을 주고 뼈를 친다
지난 9월, 미국은 중국의 첨단분야 경쟁력 확보 저지와 자국의 안보 등을 이유로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고강도 제재를 발표했다. 그러다 지난 10월, 일부 기업의 거래 요청을 승인했다.
미 상무부는 인텔과 AMD가 화웨이에 PC용 서버 등 일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강력한 화웨이 제재가 오히려 미국 반도체 기업 공급망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몇몇 기업이 화웨이와 거래를 재개하면서 퀄컴과 미디어텍 등의 주요 반도체 업체들도 연내 화웨이와 거래 허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스마트폰용 OLED 일부 품목에 대해 공급 허가를 받았으며, 소니도 스마트폰용 이미지센서 공급이 허용됐다.
다만 스마트폰용 OLED 제품은 중국 업체인 BOE 등으로부터도 구매할 수 있어서 이번 공급 허가가 실제 화웨이로의 수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BOE보다 물량이 적고, 연간 OLED 패널 출하량의 10%를 화웨이에 공급하는 수준이다.
또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키옥시아, TDK 등 미국 정부에 거래 허가 신청서를 제출한 국내외 기업도 승인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현재 미국 정부는 서버, 디스플레이, 이미지센서 등 중국 내 다른 기업으로부터 조달할 수 있거나 상대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품목에 대해서만 거래를 허용하고 있다.
아직 첨단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 수출 허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승인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 화웨이, 자체 파운드리 추진하며 자구책 마련 중
화웨이는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를 돌파하기 위해 핵심 부품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조달하려 상하이에 반도체 공장 건립을 추진하며 기술 독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에 화웨이가 설립하는 새로운 반도체 공장은 주로 저가형의 45nm 칩 시험 생산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45nm 칩은 이미 주요 반도체 기업이 10여 년 전부터 상용화해온 기술로, 당장 화웨이가 도입해 안정화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화웨이는 우선 45nm 공정을 안정화한 후, 2021년 말에는 28nm 공정을 도입하여 5G 통신장비는 물론 스마트TV와 기타 IoT 기기에도 탑재한다는 구상이다. 그간 화웨이가 사용하는 반도체 설계는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담당했고, 생산은 대만 TSMC 등이 해왔는데 자체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면 이들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다만, 전 세계 파운드리 1, 2위 업체인 TSMC와 삼성전자는 5nm 공정 칩 기술 개발로 주도권을 확보한 상태다. 이제 45nm 공정을 시작하는 화웨이가 추격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 바이든 행정부, 중국 포위할 ‘동료’ 모집할 것
미국 현지 시각으로 11월 7일 오전, CNN, NBC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美 민주당 前 상원의원인 조 바이든(Joe Biden)이 당선을 확정 지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현 미국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있지만,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은 어느 정도 기정사실이 됐다. 바이든의 당선은 화웨이와 중국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년간 TPP 탈퇴, WTO 무력화 등으로 다자통상 질서의 약화를 초래했다. 또한, 국가 안보를 무역에 접목한 고율의 관세 부과를 통해 미중 무역을 촉발했고, 미국의 이익을 앞세운 양자 무역협정 체결 등 불확실성이 높은 통상정책을 추진해왔다.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인의 통상공약은 현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 내 제조, 미국산 구매 등 미국 제조업 부흥,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코로나19로 악화한 국내 경제를 회복하고 국내 기반 경쟁력을 강화하는 자국 중심의 통상정책을 펼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제 안보는 국가 안보’라는 입장의 바이든 당선인은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시정하고, 다자무역 질서를 훼손하는 중국의 구조를 개혁하겠다고 밝혀 강경한 대중국 정책은 전 행정부에 이어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통상정책을 통해 동맹국들과 갈등을 빚었으나, 바이든 행정부는 다자주의와 동맹국과의 연대를 통해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고 세계통상 질서를 주도해나간다는 견해를 비추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번 미국 대선 결과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보고서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중국 압박’과 ‘다자협상’이다”라며,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적극적 협조를 구할 가능성이 커 대중무역 비중이 큰 기업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짚었다.
◇ 화웨이 제재 완화 가능성 거의 없어
미국에서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하더라도 미중 대립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 가운데 화웨이를 겨냥한 제재와 압박에 동참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미국은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원천 차단하면서도 민감하지 않은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거래를 허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기업도 화웨이와 공급망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만큼, 보안 우려를 잠재우고 수출 피해 최소화, 비즈니스 지속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