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시대,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며 파운드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무역분쟁, 자연재해, 사고 등이 반도체 수급 불안정을 야기하는 가운데, 미국, 중국, 일본이 한국, 대만에 편중된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파운드리,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반도체 수급 안정,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져
GDP “TOP 3” 국가들, 반도체 자립 선언
“오보였다.”
지난 3월 31일, 실제였다면 세계 경제가 요동칠 뻔한 오보가 발생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의 12B 팹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 언론을 타고 알려졌다. 다행히도 이는 오보였다.
실상은 12B 팹 내의 변전기가 과열하며 연기가 났고, 화재경보기가 이를 화재로 오인해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를 작동, 직원 1명이 이산화탄소를 과다 흡입한 일 외의 피해는 없었다. 또한, 해당 직원의 건강에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반도체 수요 증가로 TSMC를 위시한 파운드리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TSMC]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비대면 경제 활성화로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며 파운드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파운드리(Foundry)는 반도체 설계만 전담하는 팹리스(Fabless) 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최초의 파운드리 기업인 TSMC는 1987년 설립된 이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글로벌파운드리스(GlobalFoundries), UMC, SMIC 등을 큰 차이로 따돌리고 있다.
화재경보기 ‘오보’와 화재 ‘오보’가 동시에 일어난 이번 TSMC 12B 팹은 12인치 웨이퍼 기반의 칩을 제조하는 곳으로, SoC, SiP 등의 시스템반도체와 DRAM, NAND 등의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해당 제품들은 오늘날 애플리케이션들의 고성능, 고효율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핵심 디바이스다.
최근 들어 심화한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안정 문제는 파운드리의 몸값을 더욱 올렸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소비 심리 위축 등으로 자동차 수요가 감소하며 반도체 생산 주문이 줄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빠른 경기 회복으로 품귀 현상이 초래됐고, 해당 문제는 소비자 기기와 산업용 반도체에도 확산 중이다.
여기에는 지난해부터 불거진 미·중 무역분쟁 영향도 있다. 화웨이, 하이실리콘 등 중국 기업과 그 계열사로의 부품 공급을 차단하는 미국의 고강도 제재로 공급 부족을 우려한 업계의 사재기와 과잉주문 등도 반도체 공급망에 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기록적 한파에 따른 텍사스 지역 반도체 공장 가동 중단, 일본 후쿠시마 지진과 르네사스 공장 화재 등 자연재해와 사고 등의 악재 역시 반도체 수급 불균형을 가중했다. TSMC 화재가 오보라서 다행인 이유다.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품목으로, 수급 불안정은 디바이스 적시 출시를 불가하게 만들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하락을 불러온다. 이에 주요국은 파운드리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자립화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 IDM 1위 美 인텔, 바이든 뒷배로 파운드리 사업 선언
지난 3월 23일, 세계 최대의 종합반도체업체(IDM)인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에 200억 달러(약 22조 6,000억 원)를 투입한다 선언했다. 지난 2016년,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에 진출했다 2년 만인 2018년에 철수한 바 있다.
인텔은 자체 설계 반도체 생산을 위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신규 팹 2개를 설립하고, 확장된 생산 능력을 통해 x86 아키텍처 기반 제품은 물론, Arm 아키텍처 기반 제품도 생산하는 등 유연한 파운드리 사업을 전개할 방침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1년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56%), 삼성전자(18%), 글로벌파운드리스(7%), UMC(7%), SMIC(5%) 순일 전망이다. 이중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은 글로벌파운드리스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24일,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 평가 행정 명령에 서명하며 TSMC, 삼성전자 등 동아시아에 80% 이상 집중된 파운드리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 이러한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 반도체 제조 역량 강화 정책 등에 인텔의 행보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인텔은 수십 년간 CPU, 통신, IoT, 메모리에 이르는 방대한 IP를 축적했다. 또한, 실리콘밸리 내 팹리스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에 이미 기술 파트너십을 맺은 IBM, 마이크로소프트(MS)뿐만 아니라 아마존, 구글, 퀄컴, 시스코 등 자국의 주요 IT 기업을 고객사로 유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인텔이 미국 애리조나주에 신규 팹 2기를 더 짓는다
사진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인텔의 팹 42 [사진=인텔]
업계에선 인텔의 이번 조처가 시장에 끼칠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5나노에서 3나노까지 이어진 TSMC와 삼성전자의 미세 공정기술 경쟁에 7나노 공정에도 한계를 가진 인텔이 당장 뛰어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인텔이 10나노 이상 시장에 집중하면 글로벌파운드리스, UMC, SMIC 등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자금력을 갖춘 인텔이 이른 시일 내 7나노 공정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5나노 이하 공정 수준에 도달해 엔비디아, 퀄컴 등 주요 고객의 물량을 확보하면, TSMC, 삼성전자와 ‘3강’ 구축도 가능하다 분석했다.
특히 인텔 팻 겔싱어(Pat Gelsinger) CEO는 미세 공정기술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기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EUV 장비 제조 업체인 네덜란드 ASML과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TCL, 샤오미 등 中 가전 메이커, 자사 제품 전용 칩 생산 계획
중국의 가전기기 제조기업 TCL은 지난 3월 11일, 10억 위안(약 1,750억 원)을 투자해 ‘TCL 반도체’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TCL 반도체는 IC 설계, 전력반도체 소자 등 분야에 대한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IC 설계 분야에 팹리스 패턴을 모델로 삼아 수요량 높은 구동칩, AI 오디오칩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자사 제품에 최적화된 전용 칩을 생산할 계획이다.
가성비로 이름난 모바일 기기 제조사 샤오미도 지난 3월 30일, 전용 칩 개발 방침을 밝혔다. 샤오미는 이날 자사의 액체렌즈 기반 카메라를 제어하는 이미지 처리 프로세서(ISP), 서지(Surge) C1’ 칩을 공개했다.
과거 샤오미는 서지 S1, S2 등으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에 도전했다 기술력 한계로 한발 물러선 바 있다. 이날 샤오미는 애초 예상된 파운드리 관련 발언은 하지 않았으나, 중국 현지에선 샤오미의 해당 시장 진출 가능성을 어느 정도 높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1위 파운드리 SMIC는 지난 3월 17일, 선전시 정부와 협력하여 선전시에 새로운 반도체 웨이퍼 가공(Wafer fabrication)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SMIC와 선전시 정부 운영 펀드는 신규 공장 건설을 위해 23억5,000만 달러(약 2조6,400억 원)를 공동 출자할 계획이다.
해당 공장은 SMIC의 현 주력 공정인 28나노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며, 한 달에 12인치 웨이퍼 4만 개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중국 팹의 대부분이 8인치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전시의 SMIC 반도체 생산 공장은 상대적으로 최첨단 시설이 들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SMIC는 지난해 12월, 베이징시 정부와 베이징시에 12인치 웨이퍼와 IC 패키지 등을 생산하는 새로운 반도체 공장 구축도 발표하는 등 파운드리 확장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중국 기업으로의 부품·장비 수출을 금지한 미국 정부의 제재 등으로 공정개발 중단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 SMIC 상하이 전경 [사진=SMIC]
다만 SMIC가 최근 ASML과 장비 공급 계약을 1년 연장하고, 중국반도체산업협회가 지난 3월 11일, 미국반도체산업협회와 협의체 구성을 논의하겠다고 밝혀 기술개발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 日 경제산업성, 1980년대 반도체 강국 위상 회복 노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3월 23일, 민관 공동사업체를 신설하고 자국 내 생산체계 구축을 본격화했다. 경제산업성은 포스트 5G와 반도체 기술개발 지원을 위한 예산으로 총 2,000억 엔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번 계획과 추진에 약 420억 엔(약 4,285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캐논, 도쿄일렉트론, 스크린(SCREEN) 등 반도체 솔루션 3개 사와 日산업기술종합연구소가 참여하는 해당 사업체는 기판에 회로를 만드는 전(前) 공정 관련 기술개발과 제품 상용화에 나선다. 특히 2020년대 중반까지 2나노 공정기술을 확보해 과거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의 위상을 회복한다는 복안이다.
이후에는 2나노 이하 반도체 제조기술을 개발하고, 첨단 로직 반도체 제조기술 확립 등을 목표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 기술력에 앞서 있는 미국 및 대만 업체와의 협력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TSMC의 일본 내 생산거점 설립이 결정된 만큼, TSMC와의 협력 가능성이 클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 시험 라인을 설치하고 파운드리를 포함하여 첨단 반도체 제조기술 컨소시엄도 운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