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향한 미국의 경제적 압박이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행정부는 안보를 이유로 중국 기업을 5G 사업 등에서 배제하기로 하고, 동맹국에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에 북미 및 유럽 주요 국가들이 잇따라 화웨이 퇴출 선언을 하는 가운데, 삼성전자, 노키아, 에릭슨 등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5G 장비 시장 점유율, 화웨이-ZTE 하락세
에릭슨-노키아, 유럽 딛고 점유율 확장 중
삼성전자 환태평양 국가 공략으로 반전 꾀해
도널드 트럼프 전(前)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8월, 중국 기업을 5G 통신망 사업, 앱스토어, 클라우드 시장 등에서 배제하는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 구상을 발표하고 동맹국의 참여를 제안했다. 이어 들어선 바이든 행정부도 지난 3월 11일, 화웨이 5G 장비용 부품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단행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시행한 수출 규제를 포함해 더욱 강경한 대중 압박을 시사했다.
▲ 삼성전자가 2019년 8월에 공개한
밀리미터파 대역 5G 기지국 [사진=삼성전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며 이를 기반으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동맹국에 반(反)화웨이 전선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북미 및 유럽 주요 국가들이 잇따라 화웨이 퇴출 선언을 하는 가운데, 삼성전자, 노키아, 에릭슨 등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 주춤하는 화웨이-ZTE, 기회 엿보는 에릭슨-노키아-삼성전자
아이플리틱스(IPLytics)의 2월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5G 특허출원 비중은 화웨이가 15.4%로 1위이며, 그 뒤를 삼성전자(13.3%), 노키아(13.2%), 퀄컴(12.9%), LG전자(8.7%), ZTE(5.6%), 샤프(4.6%), 에릭슨(4.6%) 등이 뒤따르고 있다.
델오로(Dell’Oro)의 지난해 9월 조사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기준 5G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화웨이(32.8%), 에릭슨(30.7%), ZTE(14.2%), 노키아(13%), 삼성전자(6.4%) 순이다. 현재 5G 통신장비 시장은 이들 다섯 업체가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압박 강화 기조에 따라 5강(强)의 순위가 변동될 조짐이다. 화웨이, ZTE 합산 점유율은 2분기에만 60%에 달했다가 3분기에 47%까지 떨어졌다. 반면, 에릭슨, 노키아 합산 점유율은 30.8%에서 43.7%까지 올라갔다.
화웨이와 ZTE가 중국 내수 시장에만 머무르고, 에릭슨과 노키아가 유럽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북미와 일본 시장에서 집중하고 있다.
◇ 삼성전자, 에릭슨-노키아 텃밭 유럽 대신 북미 및 일본에 집중
삼성전자는 지난 23일, 일본의 NTT도코모와 5G 통신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NTT도코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본에서 가입자 8,200만 명을 보유한 1위 이동통신사업자로, 한 해 4.5조 엔 이상의 모바일 서비스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이번 계약으로 삼성전자는 일본 2위 통신사업자 KDDI(2019년 10월)에 이어 NTT도코모를 5G 고객사로 확보하며 일본 5G 이동통신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했다.
NTT도코모는 과거 CDMA, LTE 등 세계 이동통신 표준 제정을 선도했다. 현재도 수많은 연구개발 인력을 직접 고용해 다양한 기술 개발과 표준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NTT도코모에 5G 상용망 구축에 필요한 기지국(Radio Unit; RU)을 공급하고, 신속한 5G 네트워크 구축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 16일에는 캐나다의 사스크텔에 5G 및 LTE 이동통신 기지국, 가상화 코어 장비의 단독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사스크텔은 캐나다 서스캐처원주 정부가 운영하는 통신사업자로, 삼성전자는 LTE 및 5G RU, 다중입출력 기지국(mMIMO), 가상화 코어용 SW, 유지보수 및 최적화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네트워크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5G 및 LTE 데이터 트래픽을 동시에 처리하는 5G 가상화 코어 장비도 해외 업체 최초로 공급한다. 사스크텔은 3G 네트워크를 구축한 2010년부터 12년째 화웨이 장비만을 사용했는데, 5G를 구축하는 시점부터 화웨이를 배제하고 삼성전자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사스크텔은 2022년, 삼성전자 5G 장비를 통해 5G 비단독모드(Non Standalone; NSA) 서비스를 우선 개통하고, 후에 삼성전자로부터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지원받아 5G 단독(Standalone; SA)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12월, 비디오트론과 5G 및 LTE 이동통신 기지국 단독 공급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6월에는 캐나다 3대 이동통신사업자 중 한 곳인 텔러스(TELUS)와 5G 이동통신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전 세계 12개 이동통신사업자에 5G 장비를 납품하고 있다.
시기순으로 △2018년 5월, 미국 스프린트 △2018년 9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2019년 10월, 일본 KDDI △2019년 12월, 캐나다 비디오트론 △2020년 2월, 미국 US셀룰러 △2020년 3월, 호주 스파크 △2020년 6월, 캐나다 텔러스 △2020년 9월, 미국 버라이즌 △2021년 3월, 캐나다 사스크텔, 일본 NTT도코모인데, 전부 태평양에 면한 국가에 있는 업체들이다.
긍정적인 신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납품 계약을 맺었던 미국 스프린트가 지난해 2월, 독일 도이치텔레콤의 자회사인 T모바일에 합병됐는데, T모바일 측은 추가 대량 장비 공급계약을 에릭슨, 노키아와 대신 맺었다. 올해 2월, 미국 5G 통신장비 시장 마지막 대어였던 AT&T를 놓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북미 시장에서의 5G 사업 강화를 위해 올해 1월, 5G 망 설계 및 최적화 전문기업인 텔레월드 솔루션즈를 인수하고, 미국 국가안보국(NSA) 산하 국가정보보증협회(NIAP)에서 관리하는 보안 인증 제품으로 자사 장비를 등재했다.
◇ 가성비 뛰어넘는 정치적 갈등, 주요국 정책 면밀히 대응해야
미국 정부가 화웨이의 통신장비에 백도어가 숨겨져 있어 주요 국가와 기업의 기밀정보를 중국 정부에 전달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동맹국에 화웨이 5G 장비를 배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세계 각국은 화웨이, ZTE 등 중국산 5G 장비 도입을 금지하거나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 현재 화웨이 장비에 대한 주요 각국의 우려가 고착되고 있다
[이미지=e4ds 뉴스]
첫 시작은 중국과 심한 외교 마찰을 겪고 있는 호주('18.08)가 끊었다. 이어 영국, 프랑스('20.07), 스웨덴, 이탈리아('20.10), 캐나다('20.11)가 이에 동참했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된 우리나라와 일본은 관망세를 보이고 있으나, 배제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일본은 LTE 사업까진 화웨이 진출을 허용, 5G 사업에선 배제했다. 국내에선 화웨이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민간에서 특히 커지고 있다.
비교적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유럽 주요 국가의 이동통신사업자들은 같은 유럽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에릭슨, 노키아로 화웨이를 대체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환태평양 국가들을 중심으로 5G 장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반면, 중국의 차이나모바일/텔레콤/유니콤은 자국산 장비의 애국 소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독일, 브라질 등은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정치적 갈등이 5G 장비 시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중소기업의 생계를 위해서도 주요국 정책의 향방과 변화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적절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