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가전 박람회로 시작했던 CES는 최근 자동차 관련 기업들의 참여가 늘면서 라스베이거스 모터쇼라는 이명으로 불리고 있다. 분명 자동차 업계의 참여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CES 2020에서는 기존 가전 메이커나 가전과 상관없던 기업들도 인상적인 제품들을 발표하며 전 산업을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CES 2020, 여전히 모빌리티 득세했지만
AI 사례 늘고 식품·헬스케어 기업 참여 증가
디스플레이, 폴더블·롤러블·벤더블로 진화
270만 제곱미터의 전시 면적에서 4,400여 전시 업체가 2만여 개 신제품을 17만여 명의 참가자에게 선보인 CES 2020이 나흘간의 여정을 마치고 지난 10일 폐막했다.
소비자 가전 전시회인 CES는 몇 년 전부터 자동차 전시회라 불릴 정도로 많은 자동차 관련 기업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현대차의 개인용 비행기 콘셉트 기체 'S-A1' (이미지=현대차)
자율주행차량 및 커넥티드 카 기술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서 CES 2020에선 하늘을 나는 자동차마저 등장했다. 현대차와 우버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개인용 비행체 콘셉트 기체 ‘S-A1’을 선보였다.
현대차 외에도 BMW, 아우디, 포드, 메르세데스-벤츠, 토요타 등 내로라하는 완성차 기업들이 최신 모빌리티 기술을 선보인 것은 물론, 소니마저 콘셉트 전기차 ‘비전-S’를 공개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CES 2020 참관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서 58%의 응답자가 주목한 분야로 미래 자동차를 뽑았다.
그렇다고 CES 2020가 자동차 관련 기업들만 두각을 드러낸 ‘라스베이거스 모터쇼 2020’이었던 것은 아니다. 기존 가전 기업 역시 AI, IoT, 5G 등을 접목한 가전을 선보였으며, 가전과 거리가 멀어 보였던 식품 및 건강보조 기업의 참여 증가도 눈에 띄었다.
AI는 기본 중의 기본
AI가 없다면 새롭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CES 2020에서는 AI를 강조하지 않는 기업이 없었다. PwC는 2018년 2월, 2030년 전 세계 GDP를 114조 달러로 추정했는데, AI 활용이 늘어나면 최대 14%(약 15.7조 달러) 더 향상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CPU 분야에서 AMD의 매서운 추격세를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인텔은 프로세서 성능 진전보다는 AI 최적화에 더 초점을 맞춘 모양새였다. 인텔은 공개 행사에서 넷플릭스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서 AI를 활용하면 얼마나 더 쾌적한 스트리밍이 가능한지를 강조했다.
▲삼성전자 지능형 컴퍼니언 로봇 '볼리'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첨단 하드웨어와 AI 기술이 결합한 개인 맞춤형 케어를 강조하면서 구(球)형 로봇인 ‘볼리’를 처음 공개했다.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 기능이 탑재된 볼리는 시큐리티 로봇이나 피트니스 도우미 역할을 하는 등 필요에 따라 기능을 확장할 수 있다.
LG전자는 엘레멘트 AI와 손잡고 AI 발전 4단계(효율화-개인화-추론-탐구)를 발표하고 이에 따른 전략을 발표했으며, 브런즈윅, 두산, 존 디어(John Deere), 교세라 등의 기업들이 자사의 최신 AI 솔루션을 선보였다. 보쉬는 임직원 2만여 명에게 AI 교육을 실행하겠단 계획을 발표했다.
출품 제품 종류와 참가 기업 분야 늘어나
과거 가전이라 하면 TV, 냉장고, 세탁기 정도에 그쳤으나 최근에는 그 카테고리가 늘어나고 있다. LG전자는 올레드 TV 등 주력 가전 외에도 '가습공기청정기', '와인셀러', '식물재배기' 등을 공개하며 다각화하는 소비자 생활방식에 대응했다.
▲LG전자 식물재배기 (사진=LG전자)
삼성전자는 보관하는 내용물이 다른 큐브 형태의 소형 냉장고 ‘와인큐브’, ‘비어큐브’, ‘뷰티큐브’, 그리고 의류청정기 원리를 적용한 ‘신발관리기’를 소개했다.
가전과 거리가 멀어 보였던 몇몇 기업들은 CES 2020을 제품 출시 플랫폼으로 활용했다.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는 돼지고기 맛이 나는 식물 성분기반 대체육 ‘임파서블 포크(Impossible Pork)’를 소개했다.
존 디어는 로보틱스 및 머신 인텔리전스 구역에 전시 부스를 차렸으며, 벨, 델타항공, 로레알, NBC유니버설, P&G는 저마다 첨단기술을 통해 자사의 사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소개했다.
CES 2020의 건강 및 웰니스 구역은 휴메트릭스(Humetrix), 인바디 등 135개 이상의 전시 업체가 참여하며 CES 2019 대비 25%에 육박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스마트시티 구역 역시 전년 대비 25% 가까이 넓어졌다. 미국 교통부, 히타치, 지멘스 등 관련 기업과 기관들이 참여한 가운데 경제 활성화와 지역사회 번영을 도울 제품들이 조명됐다.
디스플레이, 플렉서블로 재도약 꿈꾼다
2000년대에 CES를 주름잡던 아이템은 TV였다. 2010년대 들어 OTT 서비스의 부상으로 TV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자연스레 디스플레이 산업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중화권 기업의 기술 성장으로 패널 가격마저 연일 하락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선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로 납품처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CES 2020에선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각종 제품이 쏟아져나왔다.
▲로욜 미라지 스마트 스피커 (사진=로욜)
CES 2019에서 세계 최초의 폴더블 스마트폰 ‘플렉스파이(FlexPai)’을 공개했던 로욜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다양한 시제품을 선보였다. 모자, 티셔츠, 가방 등에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입힌 것은 물론, 플렉서블 OLED를 두른 원형의 ‘미라지 스마트 스피커’를 선보였다.
LG전자는 CES 2019에 이어 롤러블 전시관 입구에 말려있다가 풀려나오는 롤러블 TV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을 20여 대 비치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용자가 화면 곡률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벤더블 OLED TV도 선보였다.
▲모토로라 폴더블폰 RAZR (사진=모토로라)
레노버는 인텔과 협업하여 접으면 10인치, 펴면 13.3인치가 되는 폴더블 랩톱 ‘씽크패드 X1 폴드’를 선보였다. 모토로라는 2000년대 후반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폴더폰 ‘RAZR’의 디자인을 차용한 폴더블폰을 공개하며 눈길을 끌었다.
폴더블, 롤러블, 벤더블 제품 개발을 가속할 것으로 전망되는 마이크로 LED를 활용한 제품들도 선보여졌다. 마이크로 LED는 칩 크기가 5~100㎛(마이크로미터)인 초소형 LED다. 소니와 삼성전자가 마이크로 LED TV를 각각 선보였다. TCL과 LG전자는 마이크로 LED로 가기 전 단계인 미니 LED를 활용한 TV를 선보였다.
아직은 LG디스플레이 정호영 사장의 말대로 100인치 이하 제품에 마이크로 LED를 사용하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LED칩 크기를 100㎛ 이하 크기에서 균일하게 만드는 것이 어렵고, 칩 크기가 작아질수록 디스플레이 패널에 옮기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CES 2020에 부스를 차린 서울반도체 이정훈 대표는 “수년 내로 마이크로 LED 생산의 기술적 난제가 대부분 해결되어 가격이 안정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 LED는 전력 소모량이 기존 패널 대비 30% 적으며, 응답속도가 1,000배 빠르기 때문에 가격만 안정화된다면 AR/VR 콘텐츠 활용에 적합하다. 따라서 향후 CES에서는 마이크로 LED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이 출시될 전망이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개발자, 경영자에게도 중요해진 CES
ICT가 산업 전반에서 활용되면서 CES는 단순히 소비자에게 신제품을 소개하는 곳, 이상이 되어가고 있다. 참가 기업의 면면이 다양해지면서 수많은 기업의 개발자, 경영자들이 업계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CES를 찾고 있다.
CES를 개최하는 CTA의 니콜 조던(Nichole Jordan) 이사는 “CES 2020중 40여 명의 CEO, 중역들을 만났는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CES에 처음 방문했다”라며 “이들은 기존 비즈니스를 재구상하고 미래 비즈니스를 설계하기 위해 CES에 참관했다”라고 밝혔다.
CES 2021은 2021년 1월 6일부터 9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