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들이 국산 칩을 구하지 못해 중국산 칩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국내 전자제품 개발에서도 국산 칩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AI에만 올인해 있는 동안 무너져가고 있는 임베디드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살려야 국내 전자 산업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자제품 개발부터 칩·부품·생산·인증까지 모두 중국산
AI 올인, 시스템반도체 개발 인력까지 빼면 미래 없어
“국산 칩이 씨가 말랐다. 제품 개발에서 국산 칩을 쓰고 싶어서 구할 수가 없어 최근 전자 업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중국산 칩을 사용하고 있다. 개발자들은 보통 쓰던 칩만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전자제품 개발뿐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반도체도 중국산 칩이 점령할 것이다”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한 국내 전자업계 관계자는 제품 개발에서 국산 시스템 반도체를 구할 수가 없어서 중국산 칩을 개발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는 삼성전자 시스템 LSI 사업부를 통해 칩을 구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문의해도 칩을 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생산을 안 하는 것인지, 팔 수 없는 것인지, 해외에 팔아서 없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은 개발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으로 국내 전자제품 개발에서 국산 칩 적용은 거의 없어지고 있으며, 가격 경쟁력에다 최근 신뢰성까지 갖춘 중국산 칩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는 프리미엄 제품에서도 확인 할 수 있는데, 국산 전자제품의 최고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경우 최근 삼성전자 갤럭시 S25가 출시 됐는데, 스마트폰의 핵심인 AP가 전략 퀄컴의 제품으로 삼성전자 엑시노스가 사라졌다.
또한 전 세계 최고인 국산 메모리 반도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갤럭시 S25 일부 제품에는 마이크론의 메모리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충전기라든지, 통신모뎀, 웨어러블 전자제품, 의료기기, 전장제품 등 수많은 전자제품 개발에서 국산 칩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 많이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칩이 중국산 ROCKCHIP인데, 저가 태블릿이나 내비게이션, TV셋탑박스, 전자책, 기타 IoT 디바이스를 비롯한 다양한 임베디드 시스템에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성능이 기대에 못 미쳤으나 2012년 이후 성능이 급성장해 저가 전자제품 업체를 비롯해 삼성전자의 크롬북에도 탑재된 적이 있을 만큼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중국의 한 반도체 메이커는 저렴한 가격과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의 수준에 준하는 성능으로 국산 전장제품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의 낮은 가격으로 국내 전장제품 업체의 칩 수주를 대거 따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존에 해당 전장업체에 납품하던 반도체 제조사 관계자는 자신들이 엄두도 못할 가격을 제안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백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최근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SiC, GaN 전력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약진이 두드러져 충전 디바이스에 중국산 GaN 칩이 대거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중국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국내 임베디드용 칩 공급을 중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전자 시장에서 견고한 지위를 누려왔던 인피니언, ST, TI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또한 국내 팹리스 업체들을 고사 직전의 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
이는 국내 전자 산업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장기적으로 국내 반도체 생산 기업에도 위협이 되고 있으나 현재 반도체 업계는 아무런 대응이 없는 차원이 넘어 관심조차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과거에도 없었으나 2021년 반도체 위기를 맞으며,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위한 각종 정책 및 지원이 논의된 바 있다.
이에 정부도 각종 R&D 및 시설투자에 대한 각종 정책을 내놨으나 성장은커녕 오히려 위기라 불릴 만큼 성장이 지지부진하다.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 매출 점유율이 2023년 2.3%에서 2025년 2%로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가운데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더욱더 문제다.
최근 AI 열풍으로 인해 AI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AI 반도체의 가장 수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HBM에만 관심이 집중되며, 삼성전자는 지난해 시스템 LSI 사업부의 인력 조정도 이뤄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는 향후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런 위기 상황은 우리나라 전자업계가 자초했다는 목소리가 크다.
인건비를 이유로 국내 전자 업계가 국내 생산 공장을 접고, 중국으로 생산 기지를 이전했고, 중국의 급성장으로 중국에서 베트남, 인도 등으로 옮겨가는 상황이 벌어지며, 국내 전자 산업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하고, 중국, 베트남 등의 경쟁력이 향상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제 전자제품 개발도 중국산 반도체 사용을 넘어 아예 개발단계 자체를 중국이나 베트남에 주문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내에서 전자제품 개발 시 각종 인증 등으로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리고, 결국은 중국산 칩을 사용해 중국 제조설비에 주문을 맡겨야 해서 비용은 비용대로 많이 들어가고 제품 단가도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중국 업체에 개발을 맡기면 인증 등도 중국 업체가 알아서 해결하고, 제조까지 해서 가져오기 때문에 아주 싼값에 공급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개발자들이 국내에서 설 수 있는 자리가 없어지고, 궁극적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국내 전자 산업이 전멸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전자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먼저 겪었던 미국, 일본 등이 전자 기업의 자국 생산을 위해 무역전쟁까지 불사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국내에 전자 제조설비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각종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한 국산 칩 개발 및 유통에 더욱 박차를 가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는 중국산 칩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