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의료보장성 확대 정책은 의료비 하락을 통해 의료접근성을 개선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만성질환 유병률이 날로 높아지는 이 시대에 의료비 하락은 국민 건강의 증대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헬스케어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것이다. 헬스케어의 효율성은 빅 데이터의 적절한 활용과 큰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이 빅 데이터를 어떻게 해야 문제없이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에 온 것이다.
헬스케어 데이터 수집 및 활용 생태계 구축되어야
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비식별 조치기관 양성 필요
규제완화/강화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문재인 정부의 의료보장성 확대 정책은 60%에 머물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치료와 의료접근성 개선을 통한 건강증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분명 이러한 정책은 국민들에게 큰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의료비 상승이 수그러드는 것과는 무관하다. 가격이 낮아지면 소비를 늘리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다. 사람들은 병원 한 번만 가도 나을 병이라도 진료비가 저렴하다면 여러 번 가서 확실히 낫길 바란다.
병원에 자주 가는 것과 건강관리는 별개의 문제다
병원에 자주 가는 만큼 사람들은 만성질환 예방에 대한 투자를 줄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만성질환 유병률이 더 증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의료보장성을 확대하는 것만으론 국민건강증진과 의료비 부담 절감을 이룰 수 없다.
지난 12월 18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 2층 토파즈 룸에서 한국경제연구원(KERI)이 개최한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서울대 경제학부 홍석철 교수는 “인구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국민의료비와 재정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라며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헬스케어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정일영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스마트 헬스케어는 혁신적인 기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이라며, “개인정보는 미국보다 훨씬 강력한 수준에서 보호하고 있는 반면, 혁신기술의 인프라인 데이터의 활용에 대해서는 법적 준비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미국 FDA의 규제 접근방식을 사례로 들며, “정부는 이해관계자와 꾸준히 조율하면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나가야 하며, 선진적인 규제는 완성도보다 유연함에 있다”라며 새로운 산업영역에서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헬스케어 데이터 활용에 대한 국가 비전 및 전략 수립해야
정 부연구위원이 공저한 ‘헬스케어 생태계 구축을 위한 데이터 통합 방안’에 의하면, 헬스케어 데이터를 활용한 의학연구, 의료서비스 모델 개발, 제품 및 서비스 개발 및 효율적인 행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헬스케어 데이터를 수집하고 구축하여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의 형성’이 필요하다.
생태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데이터 활용에 관한 종합적 국가 비전 수립 및 정책 설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데이터 활용에 관한 사회적 합의 및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하며, 헬스케어 데이터 접근 및 활용을 위한 법령과 규제의 재정비, 데이터 통합 플랫폼 구축 및 비식별 조치기관 양성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헬스케어 데이터를 통해 의학연구와 산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데이터 활용에 관한 국가 방향성과 비전을 수립하고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대규모 헬스케어 데이터 구축을 시작한 상태다.
국내의 경우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헬스케어 데이터를 활용한 다수의 정책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데이터 활용에 대한 국가 정책의 방향성과 비전이 부재하고 정책의 추진력과 일관성이 미흡하므로 국가 차원의 비전 및 전략 수립 시급한 상황이다.
다수의 분산된 데이터를 모아서 가치 있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로 생성되는 데이터를 정제해서 통합해야 한다. 따라서 장시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정부에서 인지하고 정책적으로 로드맵을 수립해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 관련 국내 정책의 대부분은 데이터의 정제와 처리, 연계, 통합보다는 활용 및 산업화에 치중되어 있다. 빨리빨리 성과가 나길 기대하여 기본을 탄탄히 갖추지 못하는 것이다. 데이터의 정제와 처리, 연계, 통합은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민간이 주도하기 어려운 영역이므로 정부는 데이터 활용을 위한 인프라 정비에 주력해야 한다.
데이터 소유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 필요해
미국은 정밀의료 데이터 구축 이전에 블루버튼 이니셔티브를 통해 개인의 의료정보 소유권 인식향상과 데이터를 이용하여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서비스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의료 기록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며, 데이터 기관에 기부할 수 있다
블루버튼 이니셔티브는 온라인을 통해 본인의 의료 및 건강기록을 다운받고, 본인이 원하는 의료진, 병원 등에 공유하도록 하는 캠페인이다.
국내의 경우 개인 의료정보 소유권에 대한 주체가 불명확하고 국민들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데이터 통합 및 활용과 함께 소유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의료정보 소유권에 대해 각 이해관계자(의료기관, 사회단체 등)마다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17년 11월, 몇몇 시민단체는 한국인터넷진흥원 등을 포함한 4개 데이터 비식별 전문기관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하였으며, 10월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형사 고발하기도 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의료정보 소유권에 대한 국가의 방향성과 입장을 정하고 캠페인 등을 통해서 인식 전환 운동이 필요하다.
개인정보 보호 및 활용 위한 관련 법령 검토해야
국내에서 헬스케어 데이터는 개인정보에 속하며 ‘개인정보 보호법’과 ‘생명윤리법’ 등을 통해서 보호받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를 활용하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개인정보의 정의 및 범위가 불명확하고,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소지가 있어 데이터 활용이 저해되고 있다. 따라서 국내 법령상의 개인정보 정의의 불분명한 부분을 보완하고 자세한 설명 및 사례를 제시하여 개인정보 정의에 대한 명확성 확보 및 데이터 활용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
헬스케어 빅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동시에 선도적인 의학연구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국내 관련법을 검토하고 헬스케어 데이터의 안전한 수집, 구축 및 활용에 관련한 새로운 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개인정보는 국내 법령상 개인정보, 민감정보, 개인식별정보로 구분되어지나 각 구분간의 계층 개념이 없고 각 구분에 따라 어떤 보호조치를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데이터의 주요 이용자가 주관적으로 보호조치를 하고 위험부담을 져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정의 및 범위를 명확히 하고 민감성에 따라 개인정보를 단계별로 구분한 뒤 상-중-하에 따라 차등적인 보호조치를 마련하고 민감성이 낮은 개인 및 건강정보에 대해서는 산업계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부 동의한 개인정보 비식별 화하여 플랫폼으로 연계해야
현재 보건의료 체계에서 개인의 의료 및 건강정보는 의료기관, 공공기관(국민건강보험공단, 심평원 등) 및 민간기업 등 다기관에 다양한 형태로 분산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에 개인의 출생, 예방접종, 건강검진기록, 의료기관의 질병 치료기록 및 개인이 계측하는 건강정보 기록 등 개인의 동의하에 비식별 화하여 하나의 통합 플랫폼에 데이터 연계 및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헬스케어 산업의 성패는 빅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고 분석하는지가 관건이다
전 세계적으로 헬스케어는 빅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분야다. 향후 데이터가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유통되기 위해서는 사회보장정보원이 비식별 조치 관리기관이 되고 기술력 있는 민간 기업에서 비식별 조치를 담당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정 부연구위원은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규제완화 혹은 강화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제도적 접근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라며, “핵심 동인인 헬스케어 데이터의 보호 및 활용을 위해 법적기반 강화, 규제 및 심사기관의 전문성 강화와 인력 충원, 공공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개인의 데이터 주권 강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첫 발은 뗐다
보건복지부는 2일, 2019년 하반기까지 보건의료 빅 데이터 플랫폼 개발을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데이터 공유와 활용을 위한 법 제도 정비 작업도 병행한다.
보건의료 빅 데이터 플랫폼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질병관리본부, 국립암센터 등 공공기관 보건의료 빅 데이터를 공익과 연구 목적으로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역할이다.
보건복지부는 하반기까지 네 개 기관 데이터를 전송하고 연계하는 시스템을 개발한다. 여기에는 데이터 연계키를 발행하는 TTP(Trusted Third Party), 비식별화 수행 시스템, 기능 및 성능 테스트 시스템 등이 포함된다. 늦어도 2020년부터 시범적으로 연구자에게 공유한다.
오상윤 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장은 “개별 기관이 보유한 보건의료 빅 데이터를 하나의 데이터 셋으로 만들고, 서로 연계해 연구를 지원한다”라면서 “2년 내외 시범사업을 거쳐 수정하고 보완한 뒤 본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갈 길은 멀었지만 첫 발은 떼었다. 위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에서 정부의 역할은 막중하다. 정부는 단기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데이터 활용법이 고심해야 하며 민간 기업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국민 건강 증대와 새로운 산업의 육성은 오롯이 정부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