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반도체는 저장에 특화된 메모리반도체와 다르게 연산과 제어에 특화됐다. 또한, 메모리반도체 생태계는 설계와 생산을 동시에 하는 IDM이 주축이지만,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는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 생산을 담당하는 파운드리로 분업화가 잘돼 있다는 차이가 있다.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지금 보다 키우려면 진입 장벽이 높은 파운드리보다 특정 작업에 특화된, 수요자 중심의 반도체 설계가 가능한 팹리스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디지털화 가속에 시스템반도체 수요처 다변화
메모리와 달리 팹리스-파운드리 분업 확고
수요 중심의 최적화된 시스템반도체 개발해야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산업은 성장 일로를 걸었다. COVID-19 범유행에 따른 비대면 수요 증가로 불가피하게 디지털화가 가속했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 성장률은 8.7%(가트너, 옴디아, WSTS 등 3개 기관 평균)에 이를 전망이다. 메모리반도체 시장 성장률은 이를 넘은 15.5% 증가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3강에 속한 동시에 2020년 세계 반도체 기업 매출 순위(파운드리 제외)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메모리반도체는 2020년, 약 639억 달러(71조 원)어치가 수출되며 대한민국 수출 비중 1위를 차지하며 타 국가와의 초격차를 이어나갔다.
▲ 시스템반도체가 2020년 5대 수출품목에 올랐다
[사진=픽사베이]
주목할 부분은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도약이다. 시스템반도체 수출액은 2020년, 2019년 대비 18% 증가하며 약 303억 달러(34조 원)를 기록하며 섬유와 철강을 제쳤다.
시스템반도체는 이제 대한민국 5대 수출품(메모리반도체, 일반 기계, 자동차, 석유화학, 시스템반도체) 중 하나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해당 지위는 유지될 전망이다.
◇ 데이터를 연산하고 제어하는 시스템반도체
반도체는 크게 ‘개별(Discrete) 소자’,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 IC)’, ‘광(Optical)반도체’ 등으로 분류된다. 개별 소자는 단일 기능의 반도체로 다이오드(Diode), 트랜지스터(Transistor) 등이 있다. IC는 수십에서 수억의 개별 소자들을 단일 칩에 집적한 반도체다.
IC는 ‘메모리(Memory)반도체’와 ‘시스템(System)반도체’로 나뉜다. 메모리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하며, 시스템반도체는 연산하고 제어한다. 시스템반도체는 정식 용어는 아니나, 산업부가 2019년 5월,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발표하며 대중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 반도체 산업 분야 구분 [표=정부]
시스템반도체는 전체를 제어하는 ‘마이크로컴포넌트(Microcomponent)’, 부분을 제어하는 ‘로직(Logic) IC’,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아날로그(Analog) IC’로 나뉜다. 범용성에 따라 범용 반도체, ‘주문형 반도체(Application Specific IC; ASIC)’, ‘특정용도 반도체(Application Specific Standard Product; ASSP)’로 분류된다.
DSP(Digital Signal Processor), MCU(Micro Controller Unit), MPU(Micro Processor Unit) 등의 범용 반도체는 다양한 제품에 사용된다. ASIC은 특정 응용 분야나 제품의 특수 기능에 맞춰 설계되며, ASSP는 ASIC를 표준화해서 다수의 기업에 공급하는 형태다.
◇ 수요처 다변화에 커지는 시스템반도체 시장
메모리반도체 수요는 PC, 서버, 모바일에 집중되어 있으나 시스템반도체는 가전, 차량 등도 주요 수요처다. 생산성과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거의 모든 산업에 디지털화 바람이 불면서 시스템반도체 수요처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으며, 시장도 확대되는 추세다.
2020년 12월, WSTS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큰 반도체 품목은 로직 IC(26%)와 메모리반도체(26%)이며, 그 뒤를 마이크로컴포넌트(16%), 아날로그 IC(13%)가 이었다. 나머지는 개별 소자(6%), 광반도체(10%), 센서(3%) 순이었다.
AP, DDI(Display Driver IC) 등으로 대표되는 로직 IC 시장은 2019년 1,065억 달러에서 2025년 1,750억 달러로 연평균 9.1% 성장이 전망된다.
CPU 등의 마이크로컴포넌트 시장은 2019년 664억 달러에서 2025년 839억 달러로 연평균 4.4% 성장이, PMIC(Power Management IC) 등의 아날로그 IC 시장은 2019년 539억 달러에서 2025년 799억 달러로 연평균 8.2% 성장이 예상된다.
◇ 메모리반도체와 다른 시스템반도체 기업 지형도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소품종 대량생산 구조로 기업이 설계부터 생산까지 담당하는 종합반도체기업(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IDM) 중심의 구조다.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다품종 소량생산, 수요자 주문형 방식으로 설계 전문기업 ‘팹리스(Fabless)’, 최적화 전문기업 ‘디자인하우스(Design house)’, 생산 전문기업 ‘파운드리(Foundry)’로 분업화가 되어있다.
두 반도체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메모리반도체의 핵심은 미세화다. 데이터 저장 용량과 속도를 올리기 위해선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소자를 집적해야 한다. 또한, 소품종 대량생산이 일반적이라 규모의 경제를 구현해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미세공정 기술과 자본력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며, IDM만이 이를 갖추고 있다.
시스템반도체의 핵심은 최적화다. 다양한 산업에서 소비자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업들은 자사 사업에 걸맞은 하드웨어가 있어야 한다. 특정 목적에 맞는 데이터 연산 및 제어 성능을 높이기 위해선 상황에 알맞은 칩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다양한 수요자가 원하는 칩을 신속하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설계 인력과 기술력이 필요하다.
▲ 매출액 기준 2020년 상위 15개 반도체 기업
[표=IC인사이츠]
2020년 11월, IC인사이츠는 매출액을 기준으로 반도체 업계 상위 15개 기업을 선정했다. 1위 인텔을 시작으로 삼성전자, TSMC,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퀄컴, 브로드컴, 엔비디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인피니언, 미디어텍, 키오시아, 애플,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AMD 순이었다.
여기서 메모리반도체에 주력하는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오시아 정도로, 나머지 기업들은 시스템반도체에 주력하는 기업들이다. 자사의 제품에 들어가는 칩만 설계하는 애플도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경쟁사와 같은 칩을 사용하면 사용자 경험의 차별화가 어렵고, 칩 벤더의 일정에 따라서 신제품 출시 시기가 지연될 수 있기에 애플처럼 자체 설계에 나서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구글, MS, AWS 등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한 칩 설계를 진행 중이며, 국내에선 SK텔레콤이 자일링스와 협업해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를, ETRI와 협업해 서버용 AI 칩을 개발하고 있다.
◇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 발전 과제
메모리반도체는 IDM 중심의 주기적인 대규모 설비투자,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등에 따른 공급과잉 발생 가능성과 가격 변동성이 크다. 시스템반도체는 주문형 생산 활성화, 설계와 생산의 분업화로 메모리반도체 대비 그럴 가능성이 작다.
정부는 2019년 4월, 메모리반도체로 치우친 국내 반도체 산업계의 구조를 개편하고자 ‘시스템반도체 비전’을 발표했다. 정부는 2018년 1.6%인 팹리스 시장 점유율을 2022년 3.0%, 2030년 10%로 높이고, 2018년 16%인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2022년 20%, 2030년 35%로 높이겠다 선언했다. 이를 달성하려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의 참여도 중요하다.
▲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사업단 출범식에서
발언하는 산업부 성윤모 장관 [사진=산업부]
초고가의 장비가 필요한 파운드리 분야는 대기업의 영역이다. 팹리스는 그나마 중소기업이 참여할 여지가 있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고가의 설계자동화(Electronic Design Automation; EDA) 도구와 반도체 설계자산(Intellectual Property; IP) 확보 등 기술 인프라가 필요하여 자본력이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높은 진입 장벽을 느끼고 있다.
중소기업의 팹리스 사업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EDA 도구 지원 사업(19.10), △12인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테스트베드 구축 사업(20.08)을, 중소벤처기업부는 △Arm IP 무료 제공 사업(20.04)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부턴 국내 주요 대학에 반도체 특화 계약학과가 신설 운영된다.
중요한 것은 수요다.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수요자 중심으로 움직인다. 정부는 자동차, 바이오, 에너지, IoT 가전, 기계·로봇 등 핵심 5대 분야를 선정하고 팹리스와 수요기업 간 협력 플랫폼인 ‘융합 얼라이언스 2.0’을 구축(19.04)하여 2030년까지 2,400억원 이상의 공공수요 시장을 창출할 것이라 밝혔으나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이에 2020년 9월, 융합 얼라이언스 2.0은 ‘차세대 지능형반도체 사업단’으로 확대 개편됐다. 사업단은 수요기업(현대모비스, 삼천리, SK텔레콤, 한화테크윈), 후원기업(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 개발기업(텔레칩스, 스카이칩스, 퓨리오사AI, 넥스트칩) 등 103개 기업, 32개 대학, 21개 연구소로 구성됐다.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성패는 산업 기반과 참여 기업 확대, 그리고 시장 형성에 달렸으며, 이를 위해선 끊임없는 지원과 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