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기연구원(이하 KERI, 원장 직무대행 유동욱)은 SiC 전력반도체 소자 최첨단 기술인 ‘트렌치 구조 모스펫(MOSFET)’을 개발하고, 전문 제조업체와 2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한국전기연구원 전력반도체연구센터 (왼쪽부터)나문경, 문정현, 방욱, 강인호, 김형우 박사
칩 크기 줄이는 기술, 공급부족 해소 기여
원천기술 예스파워테크닉스 20억 기술이전
SiC(Silicon Carbide, 탄화규소) 전력반도체의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크게 높이면서도 칩 공급을 더 늘릴 수 있는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전기연구원(이하 KERI, 원장 직무대행 유동욱)은 SiC 전력반도체 소자 최첨단 기술인 ‘트렌치 구조 모스펫(MOSFET)’을 개발하고, 전문 제조업체와 2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고 21일 밝혔다.
전력반도체(또는 파워반도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전력을 제어하는 반도체로서 가전기기, 조명을 비롯한 모든 전기·전자제품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직류 전기를 교류 전기로 바꾸어 모터(전동기)에 공급하는 인버터의 핵심부품이 전력반도체다.
전력반도체 산업은 최근 들어 빠르게 성장 중인데, 이는 전기차, 재생에너지 발전, 에너지 저장장치 등의 전력반도체 수요처가 새로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SiC 전력반도체로 전기차 인버터를 만들면 지금까지의 실리콘(Si) 반도체 인버터를 사용했을 때보다 에너지 효율이 최대 10% 높아지고 인버터의 부피와 무게를 줄일 수 있어, e-모빌리티용으로 최적이다.
이런 까닭에 SiC 전력반도체는 전기차용 수요가 급증해 최근 1년여 전부터 공급이 부족한 상태다. 또한 SiC 반도체 소재는 미국 기업의 대중국 금수 품목에 포함되는 등 미·중 기술전쟁의 대상이기도 하다.
SiC 전력반도체 성능은 실리콘 반도체보다 훨씬 뛰어나다. 이는 물질 특성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SiC 전력반도체는 실리콘 반도체보다 10배 높은 전압을 견디고, 섭씨 수백도 고온에서도 동작하며 전력 소모도 작아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국내 기술진의 SiC 트렌치 모스펫 개발 성공은 SiC 기술 1부 리그에 후발국인 한국이 합류했다는 의미가 있다.
SiC 트렌치 구조는 안정적인 동작 및 장기 내구성 확보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아 세계적으로도 독일과 일본만이 양산화에 성공할 정도로 기술 장벽이 높다.
KERI 전력반도체연구센터 방욱 센터장은 “트렌치 모스펫 기술은 우리 연구원이 지난 20년간 꾸준히 쌓아온 SiC 소재 및 소자 기술이 집약된 것”이라며 “수년 내에 SiC 시장의 주역이 될 트렌치 모스펫이 국산화 된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평가했다.
SiC 트렌치 모스펫 기술은 SiC 웨이퍼에 좁고 깊은 골(트렌치)을 만들고, 이 골의 벽면을 따라 전류 통로인 채널을 상하 방향으로 배열한 것으로, 지금까지 수평으로 배열했던 채널 구조와 차별화한 것이다. 수평으로 배열된 채널을 수직으로 세운 만큼 채널이 차지하는 면적을 절약할 수 있어서 전력 소자의 면적을 최대 수십 퍼센트 줄일 수 있다
SiC 전력반도체가 전기차에 적용될 경우 최대 10% 전비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효과가 매우 크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에 비해 SiC 전력반도체는 소수의 선진 국가들만이 독점하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개발된 트렌치 기술은 SiC 전력반도체의 생산량을 증가시켜 공급부족을 완화시킬 수 있어 주목된다.
핵심기술을 개발한 KERI 문정현 박사는 “SiC 전력소자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이 기술이 적용되면 웨이퍼당 더 많은 칩을 만들 수 있어 공급량도 늘리고 소자 가격을 그만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궁극적으로 전기차의 가격을 낮추는 효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KERI는 개발한 ‘트렌치 구조 SiC 전력반도체 모스펫’ 제조 원천기술을 포함해 제품 상용화를 위한 각종 측정·분석 기술 등 종합적인 기술 패키지를 SiC 전력반도체 전문업체인 ㈜예스파워테크닉스(대표 김도하)에 최근 기술이전했다.
기술이전 금액은 과제수탁 계약 포함 총 20억원에 이르는 대형 계약이다. 연구팀은 장비 구매부터 양산화 라인 구축까지의 전 프로세스를 지원하는 등 그동안 수입에 많이 의존했던 SiC 전력반도체의 국산화 및 대량 생산화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기술을 이전받는 ㈜예스파워테크닉스의 정은식 CTO는 “트렌치 모스펫 기술은 선진 제조사들도 최근에 제품을 출시한 것으로 안다”며 “이전받은 트렌치 모스펫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금년에 출시하여 전기차, 가전기기 고객사에게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의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사태와 미·중 반도체 갈등 국면에서 이번 기술이 어떤 변수가 될지에 대해 KERI 방욱 센터장은 “SiC 웨이퍼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이미 미국 기업의 대중국 금수 품목일 정도로 산업적 중요성이 높다는 증거”라며 “전기차 시대 도래로 전 세계적으로 SiC 전력반도체의 공급난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SiC 기술의 고도화와 양산 능력 확보가 국가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유럽 시장조사기관 IHS 마켓 등에 따르면 SiC 전력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약 7억달러(약 7,800억원) 수준에서 오는 2030년 약 100억달러(약 11조 1400억원) 규모로 연평균 32% 높은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