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 매출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역량은 12%에 불과하다. 팬데믹과 몇 차례의 셧다운에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를 겪은 美 백악관은 상무부를 통해 반도체 공급망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수요처 확대 및 전후방 산업에 대한 인센티브 확립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미국, 반도체 기술 기업 많지만, 수요 기업 적어
기술은 있지만, 비즈니스 기회는 중국보다 낮아
대중국 기조 유지하고 동맹국 협력 강화 방향
미국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 매출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역량은 12%에 불과하다. 팬데믹에 따른 수요 급증, 자연재해로 인한 셧다운 등으로 공급부족 사태를 겪으며, 미국은 공급망 안정성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했다.
▲ 조 바이든 美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상무부가 100일간
반도체 공급망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진=Gage Skidmore]
지난 8일, 美 상무부는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미국 중심의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한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반도체 5가지 필수 부문인 ▲설계 ▲제조 ▲후공정 ▲소재 ▲장비 분야를 분석했다.
설계 분야는 美 업체들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나, 대중국 매출 의존도가 높았다. 반도체 제조와 후공정도 아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또한, 반도체용 특수 액체, 기체 등은 대부분 미국에서 생산되나, 재료는 거의 해외에 의존하고 있었다.
반도체 장비 분야는 노광 부문을 제외하면 세계 수위급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미국 내 빈약한 제조역량 탓에 미국 밖에서의 매출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 반도체 사질 않는 시장, 미국 안보 위협으로 이어진다
상무부는 현재 상황이 미국 반도체 산업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것으로 봤다.
먼저 반도체 공급망의 대부분을 소수의 공급자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가령 반도체 첨단공정의 핵심인 EUV 장비는 네덜란드의 ASML만이 공급하고 있으며, 전 세계 파운드리 80% 정도가 대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외에서 생산된, 위조 반도체의 위험성도 제기했다. 위조 반도체는 해킹 등 외부의 공격을 더욱 쉽게 받으며, 연간 1,000억 달러의 재정적 손실 및 국방 시스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또한, 미국은 구식공정에서 생산된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아직도 크다. 국방 시스템이 수십 년간 유지 중이라 시스템 유지를 위한, 기존 부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서다. 이는 소비자 분야도 마찬가지여서 첨단공정으로 이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도제의 제조시설 및 수요처가 중국 같은 아시아에 집중된 것도 미국엔 위협이다. 대만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산처이며,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수요처이다. 따라서 양안 갈등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에 큰 지장을 줄 것으로 파악된다.
구조적으로 미국은 반도체 인프라 구축이 중국보다 어려운 상태다. 중국에는 반도체가 있어야 하는 기업이 미국보다 많다. 수요가 많다 보니 반도체 소재부터 전자제품 제조까지 전후방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팹 건설비가 미국이나 중국이나 비슷한데, 파운드리들은 미국보단 중국에 팹을 짓는 것이 더 득이라 판단하고 있다.
인력도 문제다. 미국은 반도체 인력의 40%가 외국 출신으로, 이민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외국 인재 유치를 강화하는 상황인데,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시행된 이민자 제한 정책으로 채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상무부는 중국의 공격적인 반도체 정책도 미국의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고 봤다. 보고서는 중국의 반도체 전략 중에 IP 도용을 통한 해외 반도체 기술 습득, 중국과 중국 외 기업의 합작법인을 이용한 IP 이전 강요 등이 있다면서, 반도체 산업 경쟁 우위 유지를 위해 IP 보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첨단공정 구축에 대한 막대한 비용이 민간투자 결정의 어려움으로 작용한다고도 지적했다. 5nm 이하 노드의 첨단 반도체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지출과 수년간의 시간이 필요한데, 수익성을 고려하면 민간투자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무부는 그 예로 지난 2018년, 글로벌파운드리의 7nm 공정 중단 결정을 들었다. 기술적으로 할 수 있었음에도 재정 때문에 이어가질 못했단 것이다.
◇ 미국 내 반도체 관련 사업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해야
상무부는 美 정부와 산업계가 협력하여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정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를 위해 산업계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공정한 반도체 배분과 생산 증가, 투자 증가를 위해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기적으로는 美 정부가 반도체 기업이 효과적인 공급망 관리 및 보안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美 의회가 올해 국방수권법(NDAA) ‘칩스 액트(CHIPS Act)’에 최소 500억 달러를 지원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그 이유로는 △반도체 제조, ATP 및 패키징을 지원하는 반도체 설비, 팹 구축, 확장 또는 현대화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하고, △로직 반도체의 첨단 및 성숙 공정, 핵심 산업과 국방에 중요한 아날로그와 디스크리트 성숙 공정, 메모리 반도체 공정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 밝혔다.
더불어 동맹국들, 美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국방부의 반도체 관련 R&D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안보 반도체 및 안보 반도체 공급망 개발과 구축을 위한 펀드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 반도체 제조 생태계 강화를 위해 친환경 에너지, 광대역 통신망, 전기차 등 반도체를 사용하는 산업에 투자하여 반도체 수요를 창출하고, 소재, 부품, 장비 등 반도체 핵심 전후방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미국의 안보와 관련한 자국산 칩 제조에 집중하여 지원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보고서는 또한, 해외자금의 강압적인 인수합병으로부터 미국의 중소, 중견기업을 보호와 STEM 인재 양성 투자 법안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 '쿼드+대만, 한국'으로 중국 부상 최대한 견제
상무부는 동맹국의 파운드리와 소재 공급사들이 미국에 투자하도록 독려해야 하며, 관계부처는 불공정한 무역관행과 산업정책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의 조화, R&D 파트너십등을 촉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고서가 언급하는 동맹국은 쿼드 3개국(일본, 인도, 호주)을 중심으로, 최근 정상회담으로 반도체 부분의 상호 보완 및 투자 촉진을 약속한 한국, 자유무역협정(FTA) 전 단계인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체결을 논의 중인 대만이 포함된다.
상무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현재의 반도체 공급망 취약점 해결을 위해 반도체 핵심 장비 및 기술에 대한 수출통제를 지속해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제제보단 발전, 기술만큼 수요 "중요"
화웨이는 지난 9월, 미국의 3차 제재에 반도체 공급에 차질을 빚자 서브 브랜드인 ‘아너’를 독립시켰고, 올해 출시할 플래그십 스마트폰에서도 5G 모델을 배제했다. 이는 미국의 제재가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나,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의 빈자리는 샤오미 같은 다른 중국기업들이 메꿨고, 5G 통신 장비 시장에선 에릭슨 등이 부상했음에도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시작한 일본의 대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 조치는 오히려 일본 내 소재 기업들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량 고객들을 향한 수출길을 막는 꼴이 되어 흐지부지된 바 있다. 국가끼리의 경제 제재는 양국은 물론 주변 국가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제재 당사국이나 기업이 생존을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어 쉽게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따라서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산업 강화와 우호적인 동맹국 기업들의 시설을 유치하는 방향의 정책을 펼쳐갈 확률이 높다. 보고서를 통해 미국도 갖추지 못한 반도체 수요처의 중요성이 두드러졌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고 있어 반도체 전후방 산업의 잠재력은 크다.
반면, 수요처 측면에서 크게 약세다. 전자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도 중요하나, 우리도 미국처럼 중국 외의 수요처를 확보하거나 국내 수요처를 확대하는 문제에 고심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