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산업의 부흥과 탈탄소화를 이루기 위해 시작된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다른 나라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변모하고, 각 국가들의 환경에 따라 축소되거나 중단되고 있다.
“우리 대륙·기업 지켜라”…전기차 보조금 他國 견제 수단 변모
韓·英, 전기차 인프라 확대 정책 펴며 전기차 보조금 축소·지급 중단
전기차 산업의 부흥과 탈탄소화를 이루기 위해 시작된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다른 나라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변모하고, 각 국가들의 환경에 따라 축소되거나 중단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국가들이 후대에 더 나은 세상을 남겨주자는 일념으로 탄소 배출 감소에 뜻을 모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17%를 차지하는 수송 부문의 탈탄소화에 합의하며 전기차 산업이 부흥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일정 가격 이하의 전기차에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며 차량의 가격 인상을 억제했고, 소비자들의 부담을 줄이면서 전기차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대표적인 진흥 정책이다.
탄소 배출 감소 등 친환경을 앞장 세워 각 나라들은 독자적인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펴며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힘써왔으며 이는 전기차 산업 육성에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한편 현재 전기차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들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살펴보면 전기차 보조금 지급 자체를 중단한 국가들과 보호무역의 성격을 띄며 자국 혹은 속한 대륙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정책을 펴는 국가들로 나뉘어지고 있다.
전기차 산업에 대해 보호무역의 기조를 띄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인 프랑스와 미국은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 타 대륙을 강하게 견제한다.
미국이 2024년 첫날 발표한 IRA,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포함 다른 나라의 전기차는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 대상을 43종에서 19종으로 대폭 줄이며 CATL 등 중국의 배터리를 사용하는 차량들을 모두 제외했고, 북미(캐나다, 미국, 멕시코)에서 조립되지 않는 차량들도 낮은 점수를 부여하며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IRA의 외국 우려 기관(이하 FEOC) 관련 세부 규정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FEOC가 만든 부품을 사용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없도록 한 것인데, 미 정부는 중국에 있는 대부분 배터리 부품 기업을 지정했다.
또한 중국 기업이 중국 밖에서 외국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한 경우, 중국 측 지분이 25% 이상이면 외국 우려 기관으로 판단한다.
지난해 미국이 IRA를 발표한 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큰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현대차그룹은 사업용 리스, 렌트 차량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고, 미국 OEM들의 대표 모델인 대형 SUV 보다는 작고 쉐보레 볼트 EV보다는 큰 적당한 사이즈의 차량(아이오닉5, 6 등)으로 미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다만, 배터리의 핵심광물을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는 우리나라이기에 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의 정책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플랜들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지난 12월 전기차 보조금 개편하며 유럽산 전기차에 큰 힘을 실어주는 한편 우리나라의 차량 중에는 현대 코나 모델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수정했다.
기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던 기아의 니로와 쏘울은 제외되었다.
프랑스 정책의 가장 큰 변화는 환경 점수를 따져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점인데 이는 전기차 생산과 운송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을 철저히 확인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해상 운송 탄소배출량도 따지게 되면서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 매우 불리한 정책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는 중국산 전기차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프랑스 정책으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차종은 총 22개 브랜드 78종,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전기자동차의 65%가 해당된다.
일본의 닛산의 TOWNSTAR과 토요타의 PROACE CITY VERSO ELECTRIC, 테슬라의 Model Y 차량 등은 독일에서 생산되기에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다.
한국과 영국은 지금까지 전기차 보급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전기차 충전기를 비롯한 인프라에 지급하는 흐름이 보이고 있다.
지난 12월 열린 ‘2023년 전기차리더스포럼’에서 류필무 환경부 과장은 2024년 전기차 보조금 총계는 2023년에 비해 줄었으나, 인프라에 투입되는 예산을 늘려 전기차 운전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프라에 예산을 투입하며 충전기 편의도 확대할 방침이다.
류 과장은 “2023년 11월 기준 29만개 정도의 충전기를 2030년까지 123만개로 늘리는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며 “충전 산업과 전기차 보급이 맞물려 돌아가도록 검토하고 정책을 펼쳐 나갈 것”이라 전했다.
영국 교통부는 2022년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종료하겠다고 발표할 당시 보조금 지급 금액을 충전 인프라 확대에 투입하고 싶다는 뉘앙스를 표한 바 있다.
영국은 본래 약 5,000만원 이하 전기차 구매 시 최대 240만원 보조금 지급했었다.
영국 자동차 제조업 협회(SMMT) 조사 결과 신차 6대 중 1대가 전기차였던 것이 보조금 지급 중단 여파로 2023년 10명 중 1명 미만으로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를 밝힌 바 있다.
영국은 충전인프라에 대한 확실한 지원책과 2025년부터 주요 도로에는 60km마다 최소 150kW 이상의 출력이 가능한 전기차 급속 충전소가 설치돼야 한다는 EU의 최근 법안에 따라 결제와 충전 편의성을 대폭 확대하며 뱉은 말을 깔끔하게 지켜 나가고 있다.
영국은 지역 전기차 인프라 확충을 위한 예산으로 약 6251억원를 배정했으며, 영국 내 충전 인프라는 2022년 대비 2023년 42% 증가했다.
영국의회는 지난 10월 충전소 사업자는 충전소의 요금과같은 주요 데이터를 온라인을 통해 제공해야 한다는 법안도 통과시키며 보조금의 가치를 웃도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독일도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전기차 보조금 지급 중단을 발표하며, 기존 2024년말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정책을 뒤집어 엎었다.
앞의 국가들과 보조금 중단의 이유와 다르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코로나19를 대응하겠다는 방침으로 책정한 600억유로, 약 85조7,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기후변화대책기금으로 사용하겠다는 전용(轉用)은 위헌이라 판결하면서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변경하게 되었다.
독일은 2023년 11월까지 유럽 내 전기차 판매의 25.9%를 차지, 글로벌 시장의 약 6%를 책임지는 최대 판매국임과 동시에 현대차그룹의 한국 제외 글로벌 판매국 2위이기 때문에 전체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은 지난 9월부터 기업용 전기차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는데 그 달 독일 내 전기차 판매량이 29% 줄어든 바 있어 앞으로의 흐름도 지켜봐야 한다.
KDB미래전략연구소는 ‘독일 전기차 보조금 지급 중단과 국내 영향’을 제목으로 한 이슈브리프에서 2024년은 브랜드별로 전기차 판매 가격을 인하하는 등 가격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중장기적으로는 저가 전기차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이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