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가까이 모바일 시장을 주름잡았던 LG전자가 시장을 떠났다. LG전자는 모바일 역량을 가전과 전장 분야로 돌려 미래에 대비할 방침이다. 한편, LG전자의 빈자리는 국내에선 중저가 스마트폰 라인업 강화에 적극적인 삼성전자가 메울 전망이다. 반면, 해외에선 애플 및 여타 중국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23분기 연속 적자 기록한 MC 사업본부 정리한
LG전자, 모바일 역량 ‘가전·전장’ 분야 투입
삼성-애플-중국, LG폰 빈자리 쟁탈 시작
26년 가까이 모바일 시장을 주름잡았던 LG전자가 마참내 시장을 떠났다. LG전자의 빈자리는 누가 채우고, LG전자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LG전자는 5일, 이사회를 열고 오는 7월 31일부터 MC(Mobile Communications) 사업본부의 생산 및 판매 종료에 결의하며 모바일 사업 철수를 공식화했다. 1995년, ‘화통’ 브랜드를 시작으로 피처폰 사업을 시작했던 LG전자는 2005년 초콜릿폰, 2007년 프라다폰 등을 발표하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에는 경쟁사보다 늦게 진입하면서 고전했으며, 2015년 2분기 이후부터 2020년 4분기까지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19년, 국내 생산을 중단하고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해 제조자개발생산(ODM) 비율을 높이는 등 사업 구조 개선과 원가절감 등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고가 시장에서는 애플, 삼성전자 중저가 시장에서는 화웨이, 샤오미 등에 밀려 성과가 미흡했다.
▲ LG 윙은 LG전자의 마지막 스마트폰이 됐다 [사진=LG전자]
2020년 상반기에 ‘매스 프리미엄’ 카테고리를 만들려고 시도했던 ‘LG 벨벳’, 하반기에 폼 팩터 혁신을 꿈꾼 ‘LG 윙’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2021년 1월 11일,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1’에서 오랫동안 기대를 받아온 ‘LG 롤러블’을 공개했지만, 겨우 열흘 후인 20일, MC 사업본부 철수 및 매각 검토를 선언했다. 일각에선 LG 롤러블을 MC 사업본부의 몸값 띄우기용 제품이라 평했다.
LG전자는 매각을 위해 베트남의 빈그룹, 독일의 폭스바겐, 미국의 구글 등과 협상을 진행했다. 협상을 진행한 기업들은 모바일 사업 자체보다 LG전자가 보유한 특허권에 더 관심을 드러냈다. 반면 LG전자는 AI, 자율주행 등 미래 산업을 대비하기 위해 모바일 특허를 계속 보유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하고 매각이 아닌 사업 종료를 결정했다. LG전자의 5G 특허 보유 수는 세계 3위다.
거래처에 약속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LG전자는 5월 말까지 휴대폰을 생산할 방침이며, 사업 종료 후에도 구매 고객, 기존 사용자가 불편을 겪지 않도록 충분한 AS를 지속 제공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지원할 예정이다. 사업 종료에 따른 협력사의 손실에 대해서도 보상안 마련을 위해 협의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아픈 손가락 LG 벨벳, OS 업그레이드 '23년까지 지원
◇ 모바일 인력, 가전 및 전장 분야로 분산 예상
LG전자는 그간 축적한 모바일 사업의 자산을 기존 사업에 적용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핵심 사업에 집중할 방침이다. 6G, 카메라, 소프트웨어 등 핵심 모바일 기술은 TV, 가전, 전장, 로봇 등에 필요한 역량이다. 이에 MC 사업본부 인력을 H&A(Home Appliance & Air Solution) 사업본부, LG이노텍, LG에너지솔루션 등으로 이동시켜 R&D를 강화할 계획이다.
베트남, 인도, 브라질 등에 있는 해외 스마트폰 공장은 수요에 따라 생활가전을 생산하는 등 용도를 전환하거나 공장 부자재를 재활용할 전망이다.
LG전자는 ‘LG 웹OS(webOS)’ 운영체계(OS), ‘LG 씽큐(ThinQ)’ AI 기반 앱 및 플랫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 역량과 자산을 보유한 상태다. 이들과 모바일 경쟁력을 결합해 각각 스마트TV, 스마트홈 솔루션 개발에 활용할 계획이다. 스마트폰용 고사양 디스플레이 기술은 노트북 및 PC 패널 제품 개발에 사용될 전망이다.
또한, 스마트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신 기술을 경험한 인력이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 사업본부에 투입되어 전기차 부품과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등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미 LG전자는 △오스트리아의 차량용 헤드램프 기업인 ZKW 인수(2018)를 시작으로 △퀄컴과 5G 커넥티드카 플랫폼 개발에 착수(2021.01)했고, △미국의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인 알폰소를 인수(2021.01)했으며, △스위스의 룩소프트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전문 합작법인(JV), ‘알루토’를 출범(3.15)시켰다.
▲ LG 마그나 e파워트레인이 7월 경 출범한다 [그래픽=LG전자]
오는 7월에는 △세계 3위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캐나다의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전기차용 파워트레인 전문 JV, ‘LG 마그나 e파워트레인’을 출범시킬 예정인 등 미래차 관련 소프트웨어, 배터리, 부품 분야 사업 역량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업계에선 2015년 이후 누적된 MC 사업본부의 적자가 해소돼 투자 여력이 발생하면, 위의 전략 분야에서 대규모 M&A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삼성전자, LG전자 철수의 최대 수혜자 되나
LG전자가 모바일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며 국내외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기존 LG전자의 점유율을 흡수하기 위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시장에선 삼성전자와 샤오미가 가장 적극적이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Counterpoint Research)에 따르면, 2020년 4분기 국내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가 58%를 차지했으며, 이어 애플(31%), LG전자(10%) 순이었다.
LG전자 스마트폰 사용자는 아이폰(iOS)보다 익숙한 안드로이드 OS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삼성전자로 향하면 삼성전자는 시장점유율 80%에 육박하는 독점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아이폰보다 삼성전자의 중저가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 인도 등 신흥국 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는 최근 ‘갤럭시 A’ 라인업을 강화하며 중저가 보급형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LG전자 스마트폰 사용자를 끌어들이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또한 자사 제품과 애플 제품만 대상으로 한 중고폰 보상 프로그램에 처음으로 ‘LG V50’을 포함하며 LG전자 스마트폰 사용자 흡수 전략을 표면화했다.
샤오미는 중국 업체 중 국내 시장 진출에 가장 관심이 많다. 이에 지난 9일, ‘홍미노트 10 및 10 프로’를 국내 시장에 출시하고 LG전자 중저가 소비자층을 겨냥한 공격적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다만, 한국 소비자의 중국 제품 선호도와 신뢰도가 낮으므로 LG전자 스마트폰 소비자를 흡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북미 시장은 LG전자가 꾸준히 10%대 점유율을 기록하며 탄탄한 인지도를 확보해 강세를 보인 지역이다. 스트레터지 애널리틱스(Strategy Analytics)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북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는 14.7%의 점유율로 삼성전자(33.7%)와 애플(30.2%)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점유율 격차가 크지 않은 만큼 LG전자의 점유율 향방이 시장 우위를 강화하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내 시장과 마찬가지로 안드로이드 OS 기반의 다양한 보급형 시리즈를 갖춘 삼성전자의 LG전자 스마트폰 점유율 확보가 점쳐진다. 물론 모토로라, HMD 등 군소 안드로이드 대체 제품도 다수 존재하므로, 이들의 전략과 마케팅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신시장 개척하는 LG전자, 영향력 늘리려는 삼성전자
핀란드의 노키아와 캐나다의 블랙베리는 각각 피처폰 시대와 스마트폰 태동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우위를 이어가지 못하고 사업을 매각하고야 말았다.
▲ 지난 5일, 권봉석 LG전자 CEO는 MC 사업본부 임직원들에게
본인 명의로 메일을 보내 MC 사업 종료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진은 2019년 2월, LG 스마트폰 전략 간담회 때 [사진=이수민 기자]
그럼에도 노키아는 네트워크, 블랙베리는 소프트웨어 서비스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하여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도태했지만, 가전 및 전장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번 철수로 LG전자가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기존 LG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을 흡수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중국 제품에 대한 불신이 큰 국내 시장에선 무리 없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그 외 시장에선 어려움이 예상된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공세는 그치질 않고 있으며, 애플도 ‘아이폰 SE 2’ 같은 가성비 보급형 제품 출시로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고가 스마트폰 고객은 새로운 경험을, 중저가 고객은 기본에 충실한 기능을 원하고 있어 삼성전자가 이번 철수의 최대 수혜자가 되려면 큰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